[쿠키뉴스=민수미 기자] ‘기념’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볼까요.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뜻깊은 일을 기릴 때 우리는 기념을 합니다. 매년 6·25, 임진왜란 등의 애사에는 이 단어를 붙이지 않죠.
지난 21일 온라인 장터 중고나라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기념 시계가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해당 시계 뒷면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황 권한대행의 친밀 서명으로 보이네요. 시계 판매자는 “총리 취임 당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 이후 만들어진 시계”라며 “수개월 동안에만 권한대행 체제가 유지되므로 수량 또한 적다고 알려져 있다. 희소성을 고려해 가격은 20만 원으로 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계가 나온 것은 헌정사상 처음입니다. 지난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권한대행 업무를 수행했던 고건 전 총리도 당시 기념 시계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황 권한대행의 별명은 ‘의전왕’ 입니다. 과도한 의전으로 여러 번 구설에 올랐죠. 2015년 7월 서울 구로노인복지관 방문 당시 황 총리가 타야 한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사용을 막아 노인들은 계단을 이용해야 했고요. 지난해 3월 서울역 KTX 플랫폼 내부에 의전 차량을 들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새긴 명패로 인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네티즌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합니다. “한심합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권력 놀음에 빠져있다” “권한 대행이 벼슬이네요” “대통령 놀이, 재미있나요?” “시계 만들 시간에 특검 연장이나 하시죠” “이러다 동상도 나오겠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황 권한 대행의 기념 시계를 두고 “한국적 ‘양아치 갑질 문화’의 본질”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의 비판도 거셌습니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은 국무총리 기념 시계가 있는데 대통령 권한대행 시계를 또 만들었다”며 “권한대행을 기념한다는 것은 대통령 탄핵소추를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예의가 있다면 이런 시계를 안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과거 고건 전 총리도 권한대행 시절 ‘권한대행’ 시계를 안 만들었다. 국가의 불행을 기념하는 시계를 만든다는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황 대행이 이런 썩어빠진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 놀이를 즉각 중단하고 민생을 돌보는 데 전념하고, 특검 연장을 바로 승인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역시 이날 대구경북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하고 싶으면 빨리 사퇴해서 그 길로 가시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총리와 대행의 임무에 충실해야지, 이곳저곳에서 냄새를 피우고 침묵하면서 ‘대통령 권한 대행 시계’를 배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황 권한대행에게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황 권한대행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라는 명칭은 공문서, 훈·포장 증서, 임명장, 외교문서 등에 사용되고 있다”며 “또 각종 중요 행사 경조사시 화한·조화·축전 등에도 동일 직함을 사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일선 공무원 격려 또는 공관 초청 행사 등에 일부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념품(손목시계)의 경우에도 공식문서, 경조사 등에 사용되는 명칭과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황 권한대행 측의 해명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은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이 코앞입니다. 대한민국은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됐습니다. 경제, 안보 불안은 가중되고 국정 마비와 사회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황 권한대행은 지금 무엇을 기념하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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