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청소년과 장애인 등 사회적·신체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당국이 대책으로 마련한 ‘도가니법’ 등이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 청소년의 적 ‘아는 사람’
최근 여성가족부가 아동 청소년 대상 신상정보 등록대상자 범죄동향을 분석한 결과 전체 등록대상자는 2013년 2709명에서 2014년 3234명, 2015년 3366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유형별로는 강제추행이 1874명에서 2129명, 성매매강요 47명에서 59명, 성매매알선 39명에서 120명이 각각 늘었고 강간은 866명에서 733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성범죄자는 중 44.3%가 친족을 포함한 아는 사람으로 나타났으며 강간의 경우 지인 비율이 가족 19.2%, 가족 외 47.5%로 절반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강제추행의 경우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57.1%였다.
발생장소 역시 피해자의 집이나 범죄자의 집 등 거주지가 48.4%에 달했으며 공공기관과 상업지역 29.7%, 주택가와 이면도로 2.8%, 학교 1.2%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강간범 733명 중 32.3%인 237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경우는 67.5%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러한 가족 등 친족에 의해 발생하는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부모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강제성이 없이 부모의 자발적인 참여에 맡겨두고 있어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아동청소년 성범죄자 신고포상금제도도 시행되고 있지만 친족 등에 의해 집 등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경우 사실상 목격자에 의한 신고 자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 성범죄가) 여전히 증가하는 만큼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면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집행유예를 내리지 않도록 양형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성범죄는 복불복… 판사 ‘뽑기’에 따라 결과 달라져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더욱 심각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93건이었던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2016년 807건으로 175.4% 폭등했다.
가족과 함께 살지 않거나 장애인 부부 등 특수성을 감안할 경우 이보다 훨씬 많은 범죄가 횡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10월 장애인 성폭력 범죄 처벌을 강화한 일명 ‘도가니법’이 시행됐지만 오히려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다. 개정안에 따라 장애인을 성폭행했을 경우 최소 7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됐다. 또 사건인지가 어려운 장애인 대상 범죄 특성상 공소시효도 페지됐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대한 기소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피해상황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거나 여전히 피해자를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3년 장애인 대상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돕기 위해 신설된 진술조력인 제도 역시 사실상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기소율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진술조력인 제도란 장애인을 위해 전문 인력이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45.3%였던 장애인 대상 성범죄 기소율은 2014년 37.1%, 2015년 33.5%, 2016년 8월 기준 33.3% 등 매년 줄어들고 있다. 10명 중 7명은 기소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성범죄 상황에서 ‘항거불능’ 상태였음을 스스로 진술해야하지만 지적장애인의 경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실제로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던 여성 장애인 A 씨는 남성 봉사자로 근무하던 B 씨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그럼에도 B 씨를 작업장 교사로 오인해 신고하지 못했다. 문제가 불거질 경우 작업장에서 더 이상 일 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후 A 씨는 해당 범행에 대해 신고했지만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성폭력특례법 6조의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 그리고 협박이나 강요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애여성공감 관계자는 “어떤 검사와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장애인인권센터 등의 판단과 의견을 재판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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