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의 영화토크]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달콤하지만 쓰라린 사랑 예찬가

[이호규의 영화토크]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달콤하지만 쓰라린 사랑 예찬가

기사승인 2017-03-27 10:48:24

[쿠키뉴스 칼럼] 나도 한번 미쳐보리라! 미친 듯 사랑도 해보고, 미친 듯 놀기도 해보고, 미친 듯 일도 해보며, 이렇듯 미친 세상에 취해 그렇게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구나 위 문구처럼 무언가에 미쳐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언가에 미치긴 시간도 없고 두려움도 앞선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사랑에 미친 여배우와 유부남 감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공존하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듯 하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인간이 차가운 현실에 처한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고뇌의 모습을 그려낸다.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한대의 카메라 속에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을 천천히 담아내며 지금은 어둡지만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는 영희(김민희)의 동선을 따라가며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문성근)을 그리워하는 다양한 감정을 그려낸다. 특히 카메라는 배우 영희의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웃고, 멍한, 격정적인, 소소한, 데칼코마니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그 안에는 후회와 그리움, 정당성 등을 표출한다.

홍상수 영화의 특유의 전술 중 하나인 술자리를 통해 가슴에 묻은 감정을 쏟아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기획보다는 즉흥적으로 촬영장에서 술에 기분 좋게 취한 배우들은 좀 더 리얼한 감정선의 유입을 이끌어내며 현장에 놓인 상황을 디테일하게 분석한다.

우연하게 만난 영희와 상원은 대화 속에서 후회하지만 미친 사랑은 아름답다는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며 서로에게 잔잔한 애정을 드러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영화에서 주로 다뤄왔던 남녀관계의 갈등을 유부남 영화감독과 유명 여배우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표현했다. 배우 영희와 감독 상원은 술자리에서 그들의 사랑에 대해 자책도 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감독 상원은 가족을 버리고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그때부터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정상이 아니다. 괴물이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후회하고 산다.”

영희 역시 정확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갈등하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 지인을 만나고 토로하며 누군가 자신의 편에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철저히 홀로 남겨져 세상의 쓴 목소리와 싸우기도 하고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내면 속으로 저돌적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유유히 차가운 듯 아닌 듯 묘연한 태도의 영화 '생활의 발견' 선영, 두 남자의 행동을 일단 즐겨보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선화와는 달리 영희는 자신의 생각이 옳고 정당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쌘 캐릭터다.

홍상수 영화에서의 사랑은 순수함, 깨끗함, 아련함으로 그려지면서 획일화된 느낌이 대체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삶에 대한 지독한 허기짐이 남아있는 것처럼 애절하고 고독하고 필사적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억지스러운 스토리나 폭력과 코믹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위적이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첫사랑이 아닌 도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험한 사랑’을 그려내며 그들의 생활 속에서 두 남녀의 갈등과 고뇌를 곱씹어 본다.

영화 속 상원과 영희의 관계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을 묘사했다. 상원은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달콤해 후회해도 좋으니 멈출 수 없는 상황을 강조한다.

술에 잔뜩 취한 영희(김민희)는 선배 천우(권해효)를 만난 술자리에서 지금 본인이 저지른 사랑이 맞고 그릇되지 않다고 울부짖는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분노와 울분을 토해낸다.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거라도 얻으려고. 다 사랑할 자격 없어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 좀 조용히 하세요”라고 소리친다.

마치 지금 처한 달콤하지만 쓰라린 김민희의 현실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영희는 줄곧 영화 속에서 “아, 그렇구나”를 대사로 가볍게 던진다.

이런 대화의 유형은 무심히 아무 생각 없이 텅 빈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친구와 선배들이 영희를 둘러싸지만, 영희의 영혼은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쓸쓸해 보인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상업적이지 않고 인공적이지 않은 인물의 심리적 현상과 자연스러움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담아낸 예술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홍상수와 김민희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포장하고 정당성을 비유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대한 해답은 관객의 몫이다.

이호규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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