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이야기] “정신건강 없이는 건강은 없다”

[정신건강 이야기] “정신건강 없이는 건강은 없다”

기사승인 2017-04-03 08:53:01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거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 속담을 지금도 자주 듣는 이유는 이 시대에도 큰 손해를 보는 줄 알면서도 당장 노력이나 투자를 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흔한 영역이 건강이다.

오늘 하루를 살고 말 거면 게으르고 양껏 먹고 무절제하게 살면 된다. 그러나 사십 년을 살아야 한다면 하루살이처럼 살아서는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더군다나 사십 년을 살도록 설계된 몸을 가지고 백 년을 살아야 하니 건강을 소홀히 했다가는 육십 년을 죽지 못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건강을 말하면 육체의 건강만 챙겼지, 정신 건강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인과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보건경제학이 매우 발달한 영국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보다 인구가 약간 더 많은 영국의 2011년 정신건강 비용을 지금 환율로 계산해서 140조원이라고 추정했고 2031년이 되면 280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5년 세계보건기구의 유럽 지부는 ‘정신건강 없이는 건강은 없다(No health without mental health)’는 선언을 하고 정신건강이 인간과 사회와 경제적 자원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인권, 사회보장, 교육, 고용 등의 핵심사안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이 선언은 미국의 보건기구, 유럽연합 각료회의, 세계정신건강연맹, 일본정부에서도 승인됐다. 이들 나라들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이미 정부 차원에서 최고 지도자들이 주도해 예산을 확보하고 전문가를 양성하고 정책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늦었지만 대단히 현명한 움직임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신건강 없는 건강만 챙기다가 큰 비용과 대가를 치르고 있음이 여기저기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수년째 지속하고 있다. 폭력적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가정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발전(?) 중이다. 100조가 넘는 막대한 비용을 쓰고도 악화 중인 저출산 문제 중 정신건강 관련 사안이 큰 원인을 차지한다. 하소연 할 데 없는 감정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위험 수준의 스트레스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만성통증이나 당뇨병, 암 같은 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의 상당수가 경험하는 정신건강의 문제를 아무도 다루지 않아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비용은 증가된다. 그러면서도 ‘정신’이라는 용어에 극도로 반감을 갖고 있어서 최적의 치료시기를 놓치고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찾아다니며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결국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일이니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정부도 2016년 범부처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으나 정치적 소용돌이로 인해 정신보건 정책 추진과 실행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5월에 들어설 새 정부가 마주 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 통합과 상처받은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일 것이다.

선진국의 성공과 실패를 교훈삼고 단기와 중장기 실행 과제로 나누고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행정 서비스를 확대하고 정부 부처별로 조각조각 난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를 통합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혼란을 뚫고 출범하는 새 정부의 첫 과제를 해결해 국민의 시름을 멋지게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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