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인세현 기자]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월드컵북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W(Where The Story Ends)의 리더 배영준은 “슈퍼스타가 되긴 늦은 나이”라고 말했지만, 지난달 31일 발표한 신보 ‘아이엠’(I AM)을 들어보면 그 말이 엄살임을 알게 된다. ‘아이엠’에는 여전히 가벼우면서도 진중한 W만의 노래가 담겼다.
새 앨범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노래 제목이 짧아졌다.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쇼킹 핑크 로즈’ 등 W를 대표하는 노래의 제목은 문장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수록곡의 제목은 두 글자를 넘지 않는 단어들이다.
“저희가 원래 제목을 길게 쓰는 스타일인데, 말이 너무 길어지면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보다 함축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해 보기로 했죠. 그러면 듣는 분들이 나름대로 상상해서 자기만의 음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워낙 다양한 가수들과 작업했기 때문에 제목은 통일감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가사와 음악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은 유독 따듯하고 씩씩하게 희망에 대해 말하고 위로를 건네는 가사가 돋보인다. 신현희와김루트의 신현희는 ‘선언’에서 무엇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로 “나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다”고 노래한다. 어반자카파의 조현아가 부른 ‘증명’에서는 “완벽한 삶이 어디 있어? 나는 나 자체로 이미 완성됐어”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배영준은 이와 같은 음악이 역설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탄생했다고 털어놨다.
“이 앨범을 만든 시기가 탄핵 국면이었어요. ‘증명’ 같은 경우 촛불시위에 참여한 후 만든 노래죠. 촛불시위에서 세월호 생존자들을 봤는데, 정말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어요. 그때 제가 느낀 감정들이 ‘증명’이 된 셈이죠. 그때는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라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모두가 흔들리고 힘들었죠. 그런 것들이 저도 모르게 음악에 묻어났어요.”
다양한 보컬과 음악 작업을 하는 W의 만의 방식은 이번에도 유지됐다. 전작에 함께했던 Why는 이번 앨범 ‘세계’에 참여하며 다시 한번 W와 호흡을 맞췄다. 새로운 얼굴들도 눈에 띈다. 최근 ‘오빠야’로 이름을 알린 신현희, 가수 테이, 조현아, 뮤지컬 배우 고영빈이 앨범에 참여해 다채로운 색을 만들었다. 배영준은 “저희와 작업한 모든 뮤지션의 팬”이라고 고백했다. W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정해지면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을 만든다는 것.
“저희는 곡 쓰는 시각이 별로 넓지 않아요. 범 대중을 상대로 하거나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못하죠. 다만 부르는 사람이 이 노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이번 앨범도 부르는 사람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작업했어요.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이 만족한다면 노랠 듣게 되는 더 많은 사람도 만족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죠.”
“확립된 신념을 경계한다”는 W는 단단한 바탕 위에서 10년간 새롭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왔고,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W의 단단한 바탕은 그저 재미다. “10년간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건 애를 써서가 아니라, 그냥 이게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배영준의 답변에서 무엇인가에 잔뜩 골몰한 소년을 발견한다. 어쩌면 W는 그의 말처럼 슈퍼스타가 되기엔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W는 언제나 W였다. 굳이 슈퍼스타가 될 필요가 없는.
“노래를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작업실에서 볼륨을 크게 하고 들으면 굉장히 좋아요. 실제로 좋다기보다는 좋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 순간엔 온 세상이 내 거예요. 말로 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이죠. 그 짜릿한 4분. 그 순간이 너무 좋으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내가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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