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좋아해서 마시는 것인지 마셔서 좋은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자주 꾸준히 마신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카페 주인들에게 보람이란 투자한 만큼의 이익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카페에서 일하는 커피노동자들의 보람이 땀 흘려 일한만큼의 정직한 소득을 얻는 것이라면, 커피 소비자들의 보람은 무엇일까? 자기가 지불한 금액만큼의 가치를 커피와 서비스를 통해 돌려받을 때에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양(amount)의 시대
과거에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 인사는 “밥 먹었니?”였다. 식사를 대접할 때면 무조건 많이 드시라고 권했고, 대접받는 사람도 많이 먹어주는 것이 예의였다. 이때는 무엇이든 양으로 승부했다. 맛은 좀 떨어져도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것을 선호했다.
멋(Style)의 시대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생활이 윤택해지고난 이후에 사람들은 멋스러운 것을 추구했다. 좀 일찍 멋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제적인 형편이 좀 나아진 이후였지만, 음악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고독에 잠기는 멋을 부리게 된 것은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80년대 이후였다.
스타벅스는 1991년 신촌 이대에 1호점을 오픈했다. 그 이후로 소위 유행 좀 안다는 사람들은 스타벅스를 드나들었고, 그곳 커피가 마치 멋스러움의 대명사인 것처럼 그곳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스타벅스가 아닌 소규모 카페에 가는 것을 마치 유행에 뒤쳐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맛(Taste)의 시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대중은 맛에 반응했다. 이것은 여유시간이 많아진 여성들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까지 자유로운 사람들은 맛 집을 찾아 발품을 파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개인소유의 자동차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맛 집을 찾아가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은 이를 뒷받침해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맛에 열광하기에 맛 집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아지고 파워 블로거가 등장했다. 근래 들어 방송에서 맛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유행으로 외식업체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도 단지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맛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가치(Value)의 시대
지금도 사람들은 맛 집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맛 집이라고 가봤더니 별 것 아닌 집들도 많다는 것을...
물론, 아직도 사람들 중에는 양 많은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값이라면 양 많고 맛 좋고 질 좋은 것이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욕구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면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금 실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무의미성 때문일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것이 인간 심성 안에 있는 선한 동기의 발현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가치추구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양보다는 질을 추구했던 시대에서, 같은 가격과 같은 질이라면 이제 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미 오래전 시작된 공정무역 커피운동은 가치부여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더 나아가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마음에 더 와 닿는 가치부여의 움직임이 있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커피 한잔을 마실 때 일정금액의 통일비용이 적립된다면 어떨까? 아니면 커피를 판매하여 남는 이익금으로 장애인들의 보장구를 구입하여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어떨까? 소비자들의 의식은 이미 성장하고 있고, 그에 따라 커피 한잔을 마셔도 가치와 보람(Worthwhile)을 생각하는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와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성급한 예측일까?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