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숲을 지나던 여우가 탐스러운 포도나무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목이 말랐던 여우는 포도를 따 먹으려 안간힘을 썼죠. 그러나 높은 나무 탓에 손이 닿질 않았습니다. 여우는 생각했습니다. "저 포도는 분명히 신 포도일 거야"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입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하는 경우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죠.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김성태 의원이 1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복당 이유에 대해 "바른정당이 최순실 폭탄을 피하는 면피용 정당은 됐지만,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기는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백로처럼 독야청청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어쩌면 편하게 정치할 수도 있었다"며 "다 망해가는 자유한국당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복원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당선을 기대하고 복당한 것은 아니라며 선을 긋기도 했죠.
김 의원은 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하고, 국정농단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싸우는 게 내가 정치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길이었다"면서 "병든 보수,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 한국당을 저 나름대로 고쳐보겠다고 뛰어들었다. 한국당 내에서 뭘 잘하고 뭘 변화시키고 할지 두렵기도 하다"고 부연했습니다.
김 의원을 포함한 바른정당 비(非) 유승민계 의원 13명은 지난 2일 탈당을 결정했습니다. "친북좌파 세력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죠. 이들은 탈당 후 홍 전 지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는데요. 비난은 거셌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지지율 부진을 이유로 당내 후보를 외면한 까닭이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보수 가치'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주장하며 창당에 앞섰던 이들이 친박 세력이 남아있는 '자유한국당으로의 복귀'를 외치니, 국민 입장에서는 대단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요. 특히 김 의원이나 장제원 의원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국조특위원으로 활약했던 터라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탈당파 의원들은 현재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상태지만, 이들에게 남은 것은 '박쥐' '철새'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인' 이미지뿐입니다.
잠시 지난 1월로 돌아가 볼까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창단대회가 열렸던 24일, 바른정당 의원들은 카메라를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는 불통과 독단, 비선의 정치로 대한민국을 혼란과 절망에 빠트렸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후안무치한 패권 세력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고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앞에 용서를 빈다"고 밝혔습니다. 또 "보수정치 전통을 이어가고 좌파 패권세력의 집권을 막는 게 역사적이고 애국적인 책무라고 생각해 당을 나오게 됐다"며 "나라와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고 국민 여러분과 당원께 보고드린다. 국민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약속했었죠.
'정치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뻔한 관념이 있으니, 김 의원의 달라진 마음가짐을 탓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탈당이라는 빠른 포기에 대한 합리화로 바른정당 향한 비난을 선택한 것은 악수(惡手) 아니었을까요. 바른정당에서는 구현할 수 없지만, 자유한국당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김 의원님, 그 포도 정말 시어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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