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드] 엄벌에도 계속되는 그라운드 내 차별주의

[레드카드] 엄벌에도 계속되는 그라운드 내 차별주의

기사승인 2017-06-08 06:00:00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스포츠 정신’이라 하면 으레 종교, 인종, 정치 등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인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등의 스포츠 기구들이 차별 금지를 헌장 혹은 정관으로 정하고 있고, 이를 어길 시 대회출전 금지와 같은 철퇴가 내려진다.

스포츠의 중립성은 중요하게 부각되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이슈다. 정치, 종교, 인종에 의한 차별은 중징계로 이어지지만 그라운드 상 우월주의는 여전히 만연하다.

올 초 ‘나치 세레머니’를 한 잉글랜드 축구 팬이 결국 경기장 무기한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잉글랜드는 지난 3월23일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독일과 A매치 친선경기를 치렀다. 단순 평가전이었지만 잉글랜드 기준 14승3무13패의 A매치 전적이 말해주듯 치열한 승부가 예고돼있었다. 특히 이날 경기는 ‘국대왕’ 포돌스키의 은퇴가 곁들여졌다. 자연히 세계 축구팬의 이목이 집중됐다.

문제는 이날 원정응원을 떠난 일부 잉글랜드 팬이 나치를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 잉글랜드 원정팬은 나치식 경례로 독일을 조롱했고, 다른 1인은 손가락을 코 밑에 대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콧수염을 흉내 냈다. 그는 독일 관중쪽으로 얼굴을 돌려 목을 자르는 제스처를 취하며 ‘전범국 조롱’을 했다.

이 외에도 잉글랜드 원정팬들은 독일 국가가 연주될 당시 야유를 보냈다. 잠시 뒤엔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요를 각색한 ‘독일 폭격기 10대(Ten German Bombers)’를 부르기도 했다.

차별은 어떠한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차별을 하던 누군가가 시간이 지나 차별을 받는 입장이 됐다 해도 마찬가지다. ‘유대인 차별주의’를 내세웠던 독일이 이제는 차별받는 입장이 됐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보복은 엄벌의 대상이다. 그라운드 내 차별은 어떠한 형태라도 인정받을 수 없다.

경기 후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잉글랜드 축구의 입장과 전혀 무관한 행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레그 클라크 협회장은 “결코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다”면서 “매우 무례하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협회는 경기 직후 조사에 착수했고 석 달이 지난 6월에서야 당시 원정팬 20여명의 징계를 확정했다. 그 중에서도 언행의 수위가 높았던 2명에게는 ‘영구 경기장 입장 불가’ 처분이 떨어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중징계다.

경기장 내 차별주의에 대한 철퇴 사례는 끊임이 없지만 열광적인 팬들의 행동은 더욱 과감해질 뿐이다. 손흥민은 지난 3월 밀월과의 FA컵에서 팬들에게 “DVD나 팔고 다녀라”라는 놀림을 받았다. 박지성은 현역시절 상대팀 팬들로부터 “칭크(chink)에게 질 수 없다” “칭크를 쓰러뜨려라” 등의 말을 수없이 들었다. 김보경(전북현대)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카디프시티에 입단한 2012년 말키 맥케이 당시 감독으로부터 “빌어먹을 동양인(chinkys)”이란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도 인종차별적 언행이 나왔다. 지난 4일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우루과이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두 손을 양쪽 눈 끝에 갖다 대는 세레머니를 했다. 이 행동은 흔히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취하는 제스처다.

대회가 한국에서 진행 중인 만큼 해당 세레머니는 큰 논란을 낳았다. 국내 팬뿐 아니라 해외 언론들도 해당 세레머니에 대해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조롱했다”며 날을 세웠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발베르데는 “친구에게 한 개인적인 세레머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장 터진 제2의 비하행동으로 발베르데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우루과이축구협회는 공식 SNS를 통해 우루과이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눈을 찢는 포즈로 찍은 사진을 당당히 공개했다. 이후 매스컴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이들은 “관자놀이에 양 손 검지를 대는 건 ‘미치도록 열심히 잘 했다’는 뜻”이라고 무마했다. 그러나 FIFA는 정관을 근거로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우루과이축구협회에 해명자료를 요청했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의하면 차별주의는 억압, 착취, 존재 부인 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비과학적 행동이다. 잘못으로 판명된 각종 관념을 타자에게 투영해 우월성을 획득하는 그릇된 방식이다. 때론 억압받던 이들이 억압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금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도 있다.

차별주의적 행태는 세계적으로도 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계 스포츠가 넘어서야 할 또 다른 벽이다.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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