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알코올의존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면, 한 번 술을 마시면 중간에 멈출 수 없게 된다면 당신도 알코올 중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치료시기가 늦어질 수록 회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 알코올중독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로 많은 중독 환자와 가족들이 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쿠키뉴스는 총 8회에 걸쳐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주 목요일 다음 스토리펀딩에 함께 연재됩니다.
[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술이 먹고 싶지 않은데 어느 순간 먹고 있어요. 술에 취해 잠들고 일어나면 또 해장술을 찾고...”
20여년간 알코올의존증과 사투를 벌여온 김민지(가명·40)씨. 그는 “알코올 중독은 나를 잃어버리는 병”이라며 “내 삶이 없고 내 의지대로 살지 못했는데도 그 때는 병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환자복 차림의 민지씨는 며칠 뒤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더 이상 술을 먹지 않는 것, 알코올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에게 ‘생사(生死)’의 문제다.
◇“술이 잘 받는 편이었고 거부감도 없었어요”
알코올의존증은 알코올의 과잉섭취를 억제하지 못해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알코올 중독자 수는 약 155만명에 달한다. 이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23조 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민지씨가 처음 술을 접한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지씨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저녁에 숙소에서 친구들과 몰래 술을 나눠 마시다 체육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사발식에서 선배들이 따라준 소주를 주는 대로 받아먹다가 처음 필름이 끊겨봤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지씨는 ‘주당’으로 통했다. 술을 잘 먹고 술자리도 곧잘 즐기는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며 직장인이며 일과 후 ‘한 잔’이 매우 흔했던 시절이었다. 민지씨는 그저 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알코올의존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도 기준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평생유병률은 12.2%(남성 18.1%, 여성 6.4%)에 달한다. 즉 8명 중 1명꼴로 알코올 중독 위험에 노출돼있는 것이다. 민지씨의 주치의인 김석산 다사랑중앙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뇌의 질환이다 보니 아무나 걸릴 수 있다”며 “뇌의 질환이다 보니 애초에 누가 걸릴 줄 모른다”고 말한다. 이어 “우울증이 있다거나 불면증, 불안증이 심한 분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그것을 건강한 방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술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술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는 분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울증, 폭음으로 이어져
민지씨의 알코올 문제는 결혼 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3세.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는 남편을 따라 낯선 동네에 정착했다. 무료함과 적적함을 술로 채웠다고 말했다.
혼자 있는 시간, 민지씨는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마셨다. 자신에게 알코올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혼자일 때마다 술을 찾는 그를 막아줄 사람도 없었다. 임신 중 잠시 술을 끊었다가도 출산 후에는 산후우울증으로 또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애 엄마가 술을 마시느냐’는 시선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고, 남편도 민지씨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계속해서 그를 혼자로 내몰았다.
“어느 날은 제가 술을 먹다 필름이 끊긴 거에요. 이제 막 100일된 아이를 보행기에 태워놓고요. 저는 취해 쓰러져 있고 아이는 울고 있는 걸 남편이 발견한 거죠. 그날 온 가족이 같이 울었어요. 내가 정말 술 문제가 있구나 생각했죠.”
알코올의존증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알코올에 대한 충동이 나타나는 병이다. 환자들이 ‘술을 먹고 싶지 않음’에도 음주를 반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민지씨는 몇 차례 치료와 재발을 반복했다, 6년 정도 단주에 성공한 적도 있었지만 ‘한 잔’마신 술로 다시 중독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생각한 삶이 아닌거죠. 내가 생각한 엄마가 아니고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었어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고 제 멋대로 하려는 고집도 셌어요. 알코올중독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병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요.”
◇한 잔의 유혹, '이기는 힘' 길러야
알코올중독은 환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병이다. 음주에 대한 조절능력을 상실한 뇌 질환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 상태에 이르게 되면 술로 인해 신체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구조 변화도 함께 일어난다. 그래서 치료 시기가 늦어질수록 회복이 어렵고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술을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중독질환은 우리 뇌의 즐거움, 만족 등을 조절하는 쾌락회로의 고장으로 나타난다. 주치의 김석산 원장은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폭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뇌 가운데 쾌락회로의 조절판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꽃가루에 반응해 나타나는 것처럼 알코올중독은 쾌락회로가 알코올에 예민하게 반응해 음주를 조절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민지씨는 지난 2015년 4월경 알코올전문병원에 입원했다. 민지씨는 알코올의존증 중기 이상으로 진단됐다. 주치의 김석산 원장은 “알코올의존증 중기 이후에는 환자들이 직접 병원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아보다 술이 훨씬 힘이 센 상태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치료받을 힘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 (병원에)오셨을 때 신체적인 부분은 위염, 빈혈이 조금 있으셨어요. 신체적인 부분보다 정신적 부분이 심각하셨는데 우울증, 불안증이 심하셨고 충동조절이 어려워 분노나 화가 자주 나오게 되고 그것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현상이 있으셨습니다.”
현재 민지씨는 약 28개월간의 입원치료를 거쳐 얼마 전 퇴원한 상태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니 아직 적응이 덜 됐다면서도 학교 방학기간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주치의 김 원장은 “신체적, 정신적인 치료는 마쳤으니 사회로 돌아가 사회적 기능 등을 회복해야 한다”며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히 외래치료와 AA모임 등을 병행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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