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첫 주연이다. 드라마 전체를 책임지는 주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대중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만큼 그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으며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KBS2 금토드라마 ‘최강 배달꾼’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고경표 이야기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고경표 첫 주연에 대한 욕심보다는 대본의 재미에 끌려 출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대본이 속도감 있고 재밌었어요. 몰입도가 높더라고요. 또 전작 tvN ‘시카고 타자기’와 다른 밝은 드라마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요즘 이렇게 밝은 드라마가 흔치 않잖아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드라마여서 너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강수의 캐릭터도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와 달랐어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 전작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목표인데 제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그의 말처럼 고경표는 매 작품마다 예상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왔다.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선하고 착한 역할을 맡은 이후 SBS ‘질투의 화신’에서 까다롭고 명확한 성격의 재벌 2세 역을 맡았다. ‘시카고 타자기’에서 1930년대에서 온 유령 작가 역을 맡은 데 이어 ‘최강 배달꾼’에서는 짜장면 배달부로 변신했다. 고경표는 각 캐릭터에 빠져들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외모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털어놨다.
“제 외형적인 모습이 변하면 그 캐릭터에 녹아들기 시작해요. 이번엔 만화에서 착안했어요. 강수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만화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런 헤어스타일을 했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어요. 그래도 남자 주인공인데 ‘머리가 저게 뭐냐’는 반응이 나왔거든요. 그래도 전 확신이 있었어요. 영상으로 강수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죠. 캐릭터의 외모를 만들 때는 제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편이에요. ‘질투의 화신’은 클래식 수트만 입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시카고 타자기’는 경성시대 옷에 지금의 피트감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생각을 많이 얘기하는 편이에요.”
외모 변신에서 시작되는 고경표의 몰입은 한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과거엔 촬영이 쉬는 날에도 캐릭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한 덕분에 이젠 적응이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친구들이 제 모습에 적응을 못했어요. 영화 ‘차이나타운’처럼 일상과 거리가 먼 캐릭터를 연기할 때 특히 그랬죠. ‘차이나타운’을 찍을 때는 와일드하고 히스테릭했는데, MBC ‘내일도 칸타빌레’를 찍을 때는 갑자기 밝아지니까 친구들이 ‘얘 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캐릭터 연기를 많이 해서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제일 좋은 방법은 곧바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진짜 운이 좋아야 가능한 거고, 보통은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지내요. 일상으로 돌아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고경표는 스스로의 배우 활동 과정을 ‘성장기’라고 표현했다. 그를 지켜보는 팬들, 대중들의 입장에선 철없는 꼬맹이가 작품을 하나씩 소화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모습으로 보일 것 같다는 얘기였다. 고경표는 역시 그런 팬들과 대중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최강 배달꾼’과 첫 주연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털어놨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주연의 자리에 8년 만에 올랐어요. 촬영하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무너지고, 제가 힘내면 함께 힘나는 위치라고 생각하거든요. 8년 동안 많은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그랬기 때문에 ‘최강배달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될 테니까 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