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우리 아이 왜 배제됐나요” 특수학교에서도 학습권 뺏긴 장애학생

[월요기획] “우리 아이 왜 배제됐나요” 특수학교에서도 학습권 뺏긴 장애학생

기사승인 2017-12-04 02:02:45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장애학생과 그 부모들이 체감하는 교육 여건은 여전히 열악했다. 장애 유형 및 정도에 따라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는 특수학교조차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수학교를 들어가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의 기본 교육을 위한 책임은 오늘도 상당부분 보호자들이 떠안고 있다.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장애학생들을 대신해 학부모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수업 제한하고 입학 배제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교육

“젊은 엄마들 보면 가슴이 먹먹해요. 제가 걸어왔던 길을 똑같이 걸어야 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 길인지 제가 알잖아요.”

김지선(가명·55세) 씨의 아들 태현(가명·21) 군은 태어난 직후 산소 부족으로 인한 뇌손상을 입어 사지가 마비되는 뇌병변을 앓게 됐다. 이후 김 씨의 생활은 오롯이 아들을 향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태현 군의 상태는 갓난아이를 연상하게 한다. 언어 표현이 안 되고 보조기가 없으면 앉아 있을 수 없다. 혼자 몸을 뒤집을 수도 없다보니 하나하나 김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높고 큰 벽은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였어요. 기본적으로 특수교육이 지원돼야 하는 학교에서도 아이의 학습권 등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태현 군이 다니고 있는 서울 소재 A특수학교는 학생들의 교외 체험 학습을 한 학기에 2회로 제한하고 있다. 이마저도 차량 지원을 하지 않아 학생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걷거나 휠체어를 이용해 학교 인근 체험장을 찾고 있다. 김 씨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학교가 8대의 이동차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학생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등 일반학교 커리큘럼은 현장·체험 학습을 확대해가고 있는 추세인데, 이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갇혀 지내는 아이들에게 학교 밖을 나서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은 참 중요한데, 그 시간을 차량 지원도 하지 않고 제한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교육을 가로막는 처사죠. 게다가 30분 거리도 아이들이 이동하기에는 벅찹니다. 튀어 오른 보도블럭이나 경사진 인도 등을 가다가 휠체어를 탄 아이가 고꾸라질 뻔한 적도 있어요.”   

학교 측은 교외학습을 제한하는 이유에 대해 한번 체험을 나가면 4교시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과목별 수업시수를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며 교사가 어떻게 교수학습을 펼치는가에 따라 수업시수는 조절할 수 있다고 맞선다. 해당 사항의 개선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문의한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 및 행정은 학교장의 권한이라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서울의 B특수학교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민우(가명·18세·뇌병변 장애 진단) 군 등의 경우 전공과 입학을 기다리던 중 제시된 불합리한 전형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할 기로에 놓였다. 특수학교 전공과는 고교를 졸업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이용하는 교육 과정이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생활 및 직업 능력을 배양하며 교실을 벗어나 사회로 나가기 전 완충 기간을 갖는다.

민우 군의 모친인 박미경(가명·45) 씨에 따르면, 올해 10월 B학교는 전공과 입학원서를 민우 군 등이 속한 지체장애 학생들을 배제한 채 지적장애 학생들에게만 배부했다. 입학전형은 의사소통기술, 이동기술 등을 측정하는 진단평가를 거쳐 이뤄지는데, 관련 기초조사(혼자 50m 이상 걷기·직선과 곡선 따라 가위로 오리기·바지 등 셔츠 입기 등) 자체가 민우 군과 같은 지체장애 학생들이 해내기 어려운 항목들로 구성됐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의 항의가 일자 뒤늦게 원서를 추가 배부했다. 그러나 애초 중증지체장애 학생 등을 위한 전공과는 고려하지 않았던 학교는 진단평가를 수행할 수만 있다면 지체반 인원도 전공과에 들이겠다는 설명을 되풀이했다. 평가 항목은 고수한 채 일단 전형에 참여하라는 학교의 입장에 학부모들은 특수학교 안에서 장애 유형에 따라 입학을 제한하는 차별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지체장애 학생의 전공과 배제는 교육적 차별이 맞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석이 전해지고 나서야 평가 기준은 형식적인 것일 뿐이라고 학교 측은 밝혔다. 박 씨는 ‘교육 책임자는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장애인 및 그 보호자가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수단을 적극 강구하고 제공해야 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특수학교에서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공과를 가면 그래도 1~2년간 안전한 학교 시설 안에서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죠. 일부 특수교육자 중에서는 ‘그동안 특수학교에서 10여년을 지내면서 학교를 나갈 대비를 왜 미리 하지 못했냐’며 전공과 입학을 비꼬는 분도 있었어요. 교육자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엄마들은 두 번 세 번 더 상처를 받고 마음이 아프죠.”

◇ 시정권고 수용 안 하는 교육현장… “특수교육, 도대체 왜 필요한가”

특수학교 내에서 학생 교육을 위해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할 것들이 지원되지 않는 사례도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학부모들에게 전가된다. 특수교육법 시행규칙은 보조인력이 점심시간 등에 학생의 식사를 돕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 특수학교는 이를 보호자에게 미룬다. 해당 학교의 부모들은 매일 아이들의 밥을 먹이기 위해 학교를 드나든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활동보조인을 구해 대신 보내야 한다.

학부모의 몫은 교육 전반에 미친다. 통학버스가 부족해 직접 운전을 배워 타 지역에 있는 학교까지 아이를 등교시키는가 하면, 학교가 가래 흡인 등 수업 중 필요한 간단한 의료 조치마저 거부해 하루에 2, 3차례씩 교실을 찾는 경우도 있다. 한 특수학교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현장학습이나 의료 조치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사고가 일어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교육권이 보장되지 않고 정당한 편의가 지원되지 않는 특수교육 현실이 개선되지 않자 학부모들은 지난 10월 장애학생 교육권 침해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학부모들은 “특수교육법이 전면 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특수교육의 질 제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장애학생과 보호자의 권리 또한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더불어 “장애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자치단체장과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재단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당연한 권리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특수교육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에게 통합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생애주기에 따라 장애 유형·정도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지난해 7월에도 인권위에 집단 진정을 낸 바 있다. 인권위는 접수된 사안 중 일부를 ‘장애 차별’로 판단하고 교육부와 해당 특수학교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지만 여전히 개선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에 특수학교를 더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특수학교의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 장애학생 학부형은 “아이들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학부모도 학교 안에서 약자가 된다”며 “많은 부모가 부당한 학사 운영에도 눈을 질끈 감고 눈치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수년간 학교를 다니면서도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이어 “보조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사고위험도 있어 아예 추진을 안 하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과연 이게 아이를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나 싶다”면서 “인력이 부족하면 더 구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은 없고 굉장히 소극적인 교육활동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수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의 운영 즉, 인력 충원이나 평가 지표에 따른 관리 감독 등은 교육청이 맡고 있어 교육부가 강제성을 갖고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선을 그었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학교 운영 방침이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불만이다. 교육부 차원에서 지역별로 다른 지침을 정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다. 

조경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팀장은 “권리를 인정한다면서도 돈이 많이 들어서 또 위험 부담이 있어서 안 하면 특수교육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조 팀장은 “장애학생들은 지금껏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지원받지 못했다”며 “특수교육의 질과 그 대상자인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학교는 물론, 교육청과 교육부가 협력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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