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부심 짓밟힌 중앙보훈병원의사들의 반란

[단독] 자부심 짓밟힌 중앙보훈병원의사들의 반란

시대 역행하는 공장식 진료에 77.9% 의사들. 원장 ‘불신임’

기사승인 2018-03-04 10:42:01
흔히 의사들은 진료를 자신만의 영역이며 존재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며, 위협을 당할지라도 의학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자유의사’로 의무를 다하겠다는 선서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불가침의 영역이자 의무와 책임, 존재를 증명하는 공간이 각종 제도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에 위협받고 있다. 3시간 대기 후 3분 진료가 만연하고 응급실은 24시간 발 딛을 틈조차 없다. 심지어 초음파나 MRI 검사를 받으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하는 상황도 흔하다.

문제는 이 같은 문제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던진 국가유공자와 지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앙보훈병원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영업이익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며 30초에서 1분에 1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그마저도 힘들어져 비대면진료가 암암리에 이뤄졌다.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8개월을 기다려야하고, 세부전공과목이 아닌 분야의 진료를 해야 하며, 제대로 이행되지도 필요도 없는 협진을 처방해야하고, 불필요한 검사나 값비싼 진료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뿔난 의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 “무너져가는 공공의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중앙보훈병원의 내부갈등에 대한 제보를 받고 만난 의사들의 첫마디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뒷말은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은 없고 숫자와 자신만 생각하는 병원장의 횡포에 병원이 위태로웠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의료진들의 정상적인 진료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 했다. 수시로 사고가 발생하고, 폭언과 폭행이 이어지며 후진국에서나 발생한다는 감염병에 환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일들도 벌어졌다.

실제 이들이 제시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참담했다. 2016년 기준, 전문의 1인당 연간입원환자는 서울대병원의 2.8배, 분당서울대병원의 3배인 2683명에 달했다. 2017년 11월 기준 작성된 내부문건에서도 전문의 1인당 외래진료실적만 월 평균 760명에 이르렀다.

내과계 전문의 A씨는 “30초에 1명도 보기가 힘들 정도”라며 “환자가 의사와 간호사를 걱정하며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앉아도 되냐고 묻는 지경에서 아무리 사전에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예습을 해놔도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이에 대해 A씨를 비롯해 여러 의사들은 진료과별 정원을 무시한 병원장의 인맥위주 인사전횡과 인력배치, 과도한 실적 위주 운영을 이유로 들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진료과는 정원이 모자라는데도 전문의를 뽑아주지 않거나, 이유 없이 선발과정에서 필요인력을 탈락시켰다. 

어떤 경우는 데려올 사람이 있다며 수개월째 진료부장을 대행체제로 운영했고, 갓 들어온 신규인력에게 부장직을 맡기거나 계약직의 계약연장을 미끼로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종용했다는 진술들도 이어졌다. 

심지어 최근까지 외래 진료실적 하루 평균 5000명을 목표로 설정해 각 진료과별 실적을 수시로 확인하며 목표달성을 강요했다. 직원들의 독감예방접종을 감염내과에서 전문의가 진료한 것처럼 꾸며 외래진료 건수를 늘리거나, 요양병원 환자를 외래 접수시켜 예방주사를 맞도록 하기도 했다.


◇ 병원 내 전문의 149명 중 116명, 병원장 퇴진 요구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의 건강과 상처를 돌본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은 환자의 눈을 마주치지도, 앉아도 되냐는 질문에도 선뜻 답할 수조차 없습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전부인 진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련의 불만과 우려가 극도로 쌓여 결국 터졌다. 중앙보훈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총 155명의 의사들 중 149명이 친목을 목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의사회’는 지난 1월15일 이정열 병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149명 회원 중 82%인 122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참여인원의 95%인 116명이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그간의 인사전횡과 불합리한 병원운영 등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공공병원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의 자세와 자질이 의심된다는 공론이 모인 것.

이에 대해 외과계 전문의 B씨는 “평소 정족수도 채우지 못하던 침목모임격의 의사회에서 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투표를 단행했고, 80%가 넘는 의사들이 참여해 대부분의 의사가 병원장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어 “보훈병원에 들어온 대다수의 의사들은 흔히 말하는 빅5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며 민간병원의 이익추구, 경영위주의 진료가 아닌 공공의료에 뜻을 두고 소신진료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낮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에도 몸을 위탁한다”며 “국가유공자의 건강과 공공의료가 병원장 한 사람의 문제로 무너지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전문의 C씨는 이 외에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문제 ▶인센티브 위주의 비정상적인 임금체계 ▶의료진 대비 높은 행정직원의 비중 ▶화려하지만 내실 없이 겉치장만 요란한 성과와 개혁 등을 문제로 제시하며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반론보도문]

쿠키뉴스는 2018년 3월 4일자 홈페이지()에 <자부심 짓밟힌 중앙보훈병원의사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중앙보훈병원 병원장의 성과위주 경영과 인사전횡으로 공공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앙보훈병원은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8개월을 기다려야하고∼불필요한 검사나 값비싼 진료를 종용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환자의 경과 관찰을 위해 일정기간을 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평균 대기일수는 2개월 정도이며, 불필요한 검사나 값비싼 진료를 종용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인맥위주 인사전횡과 인력배치∼진술들도 이어졌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전문의가 부장직을 맡은 것은 진료과의 다른 전문의들의 장기간 해외연수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전문의 인사는 규정과 지침에 따른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반론했습니다. 

이 외에도 “최근의 중앙보훈병원 의사회간의 갈등은 공공의료 품질 향상을 위한 변화과정에서 기존 전문의들의 불만에 의한 것으로, 편향되고 감정적인 제보를 사실관계 확인 없이 보도하는 것은 과거의 그릇된 관행을 개선하고자 하는 기관의 순수한 의지마저 상처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입장을 알려왔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국가유공자와 국민을 위한 의료서비스 품질 혁신을 위해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며, 소통하는 조직 문화 정착으로 많은 직원들이 함께 만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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