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아직 끝나지 않은 의약품 '허가외 사용(오프라벨)’ 이야기

[월요기획] 아직 끝나지 않은 의약품 '허가외 사용(오프라벨)’ 이야기

기사승인 2018-03-26 09:16:19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의료계와 이견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에 대해 환자들의 요구가 거세지만 의원급과 병원급, 정부와 정부 등 각각의 입장이 달라 해결책 모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은 허가된 사항에 대해서만 처방·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품목 허가 시의 허가 사항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 일명 ‘오프라벨’ 사용이라고 한다.

허가초과 의약품은 임상적 근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임상 현장에서 적절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임상적 유용성, 안전성 및 윤리적인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어 식약처의 평가를 거쳐 정해진 허가사항과 달리 안전성·유효성이 불명확해 의료기관 내 전문가들의 협의 및 심사평가원의 심의를 통해 최소한의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허가초과 사용은 특히 항암제에 대해 요구도가 큰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범위를 벗어나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의료기관 내 다학제적위원회 협의를 거쳐 심사평가원장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2004년부터 운영 중인 제도이나 그동안 대상 기관이 한정되어(’18년 1월 기준 71개) 환자의 치료 접근성 및 의사의 처방권이 제한되며,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어 환자의 치료 시기가 늦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특히, 항암제는 질병의 위중함, 약제의 독성 및 부작용 문제, 항암요법 투여 주기의 지속성 등을 고려해 사용승인 신청기관을 다학제적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으로 한정하고, 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 논란 촉발=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 논란은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본격화됐다.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한 면역항암제는 일부 환자군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는 다양한 암종에 대해 사용허가(적응증)를 받거나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중에 국내에 들어오며 암환자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문제는 초기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던 면역항암제가 비급여로 사용돼 왔지만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담은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며 더 이상 허가초과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환자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의사의 처방권 문제를 제기했다. 의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평가를 통과해야만 사용이 가능한데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임상현장에서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허가 범위를 넘어선 의약품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식약처 등 정부는 의약품의 안전성 검증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부작용과 같은 인체에 위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말했듯이 허가초과로 사용되던 면역항암제는 일부 환자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이며 새로운 치료제로 떠올랐다. 반면 많은 환자에서 임상적 효과는 떨어지고, 의료비 부담만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드라마틱’한 효과의 주인공이 자신일 수 있다는 희망에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해외로 면역항암제를 처방받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경우들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치료의 윤리와 오프라벨 문제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비급여의 전면급여화 정책이 나왔고, 환자들은 자신들의 돈으로라도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싶다며 거세게 요구했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기결정된 요법은 검토과정 없이 즉시 통보하는 등 면역관문억제제 사전 신청에서 결과통보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화답했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오프라벨 사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 변화하는 허가초과 의약품 제도= 정부는 국민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허가초과약제 사용에 대한 관리제도 도입했고, 특히 항암제의 경우 질병의 위중함, 약제의 독성 및 부작용 문제, 항암요법 투여주기의 지속성 등을 고려해 2004년부터 사전승인제를 채택했다. 

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최적의 치료방법을 선택하고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강화하고자 다학제적위원회가 구성된 병원에서 치료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의약품의 무분별한 처방으로 인한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 증가의 우려가 커지고, 면역항암제 등과 관련해 오프라벨 처방의 요구가 늘어나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근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선(안)에는 다학제적위원회 구성 요양기관 중 일부에 사후승인제 추가 도입됐으며, 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는 요양기관도 ‘공용 다학제적위원회 등’을 이용해 사전 신청 가능하도록 사용기관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기승인된 요법의 경우는 요양기관이 심사평가원에 사전 신청하여 통보받아 사용했으나, 신고 시점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선 현행 다학제적위원회 구성 기관 중 ▲혈종분야: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2명→3명 이상, 혈종분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명 ▲외과계: 외과계 전문의 2명→3명 이상(최소한 외과 2명 포함)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1명 이상 상근 등 ‘추가되는 인적 요건을 만족하는 기관’은 사후 신청도 가능해진다.
    
기존의 다학제적위원회 71개 기관은 현행대로 사전 승인을 통해 사용 가능하며, 이중 현행 6명 이상에서 8명이상으로 ‘추가적인 인적 요건을 만족하는 다학제적위원회 구성’ 가능 요양기관은 사후 승인으로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후 승인 대상 환자 중 불승인요법 치료 중인 환자는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지속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이 경우 해당 병원은 불승인된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에 대한 환자의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하며, 지속사용 결정 사실을 심사평가원에 신고해야 한다.

또 다학제적위원회의 인적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요양기관도 공용 다학제적위원회(대한의사협회 운영 예정) 또는 연계 요양기관의 다학제적위원회를 이용해여 심사평가원에 사전승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타 요양기관이 심사평가원의 사용승인을 받은 허가초과 항암요법(기승인 요법)에 대해 사용 절차를 간소화해 환자의 치료시작 시점을 앞당길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에 대해 일부 환자들과 의료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3인 이상인 대학병원이 지방의 경우 거의 없고, 공용다학제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워 제도가 자칫 그림의 떡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환자들은 의약품의 허가초과(오프라벨) 사용을 원한다=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은 항암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교과서에도 허가 범위 외 적응증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의약품조차 제약사의 신청 없이는 허가범위가 확대되지 못해 오프라벨로 처방되는 의약품이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각 학회별로 다빈도로 처방되는 오프라벨 의약품에 대한 명단을 확보하고 급여확대 혹은 허가범위 확대를 위한 의견을 개진할 계획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렇게 접수된 의약품만 52개.

이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더 많은 수의 의약품이 흔히 교과서 수준의 임상적 효과와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의약품 가격이 너무 저렴해 삭감이 돼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어 52개에 그친 것”이라며 의료계와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당부하기도 했다.

환자들은 식약처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급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는 희귀난치질환, 중증질환 환자 특히 영유아나 소아환자와 같이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해 식약처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연령 제한 약제의 경우에는 반드시 급여로 인정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과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폐동맥고혈압 치료제의 경우 18세 이하에서는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못해 식약처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전 연령대에 처방되고 있으며, 허가를 받은 다른 대체약제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혜택을 받는 성인환자와 달리 소아환자의 경우 비급여로 고가의 약값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소아 중증질환이나 휘귀질환 약제 외에도 오랜 기간 동안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약제로 이미 특허가 만료되었거나, 대체약제와 비교해 비용대비 높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약제, 교과서에 실리거나 근거수준 ESC I, IIa 약제 등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경우에도 하루빨리 급여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환자와 의사들은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프라벨로 의약품을 사용해왔다. 정부도 국민건강을 위해 오프라벨 사용 기준을 정하며 최대한 사용을 자제토록 해오고 있다. 환자와 의료진은 아직 부족하게 느끼지만 정부로서도 한명의 환자라도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두 환자를 중심에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약제는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사용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즉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면 환자도 사용할 수 있게 제도도 함께 변화돼야 할 것이다. 향후 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기대해본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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