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과 차선을 논하다가 차악을 택한 것 같습니다. 주변 장애인 동료들에게 선뜻 권하기도 망설여집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범이 시행을 앞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은 지난해 12월 시행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겅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5월부터 1년간 실시된다.
시범사업에서 장애인 건강주치의는 장애로 인한 문제를 관리하는 ‘주장애관리의사(지체장·뇌병변·시각장애 관련 전문의)’와 만성질환 및 일상적 질환을 관리하는 ‘일반건강관리의사(의원급)’ 두 종류로 나뉜다. 정부는 담당 의사에게는 기존 진찰료와 다른 별도 (진료) 수가를 책정하고, 1년마다 주치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했다
지난 19일 장애계에서는 장애인주치의제도의 실효성이 미미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왔다. 제도의 수혜자들인 장애인들조차 의구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은 “장애인 입장에서는 이익이 크지 않다. 기대가 많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제도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사무차장은 ‘주장애관리의사’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표했다. ‘주치의’라는 책임이 두 명의 의사로 나뉘어져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고,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주치의의 진료의뢰·회송으로 연계하면 될 일을 불필요하게 제도화했다는 설명이다.
이 차장은 “장애인들은 장애로 인한 특수한 합병증이 많다. 그런데 보통 우리나라 의사들의 장애에 대한 전문성은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각종 검사나 협진 등으로 진료비 부담이 상당하다”며 “결국 우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병력을 관리해주고, 전문 진료가 필요할 때 제대로 안내해주는 한 명의 주치의다. 그런데 두 종류로 나뉘는 바람에 책임이 분산됐다. 누구를 찾아가든 의사들끼리 내 정보를 알아야하는데 가능한지 의문이고, 굳이 전문 진료를 하는 주장애의사를 주치의로 들여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의료접근성 향상이라는 취지와는 별개로 의료계 내부의 밥그릇 싸움만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재활의학과 등 6개 전문과목만 허용한 주장애의사의 기준을 넓혀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고, 한의사들도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에 포함시켜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태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실장은 “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의료인을 중심으로 주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장애인의 건강권을 지켜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의사들의 밥그릇을 챙기는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장애인에게는 단순히 수가 때문에 참여하는 의사보다는 장애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장애인권감수성이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장애인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의사에게도 있어야 하는데 주치의가 해결책이 될지는 못미더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주치의가 아는 환자 정보가 회송된 다른 병원에 갔을 때도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간 정보가 연계되지 않는다. 이것은 장애인주치의제만 시행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제도적 보완을 통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제도 시행과정에서 전문가나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이용자 중심의 제도로 자리매김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보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제도 자체가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설계됐지만, 정작 중증 장애인에게는 주치의보다는 방문 진료에 대한 수가책정이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김소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기획부 차장은 “장애 유형별로 입장차가 있겠지만 척수장애인들에게 주치의제도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차장은 “척수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대학병원을 주로 다닌다. 장애의 특수성 때문이다. 척수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건강문제를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간단한 질환이면 동네의원을 찾지만 장애로 인한 문제 때문에 일반건강관리의사나 주장애의사를 통해 해결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도 분야가 세분화돼 있기 때문에 재활의학과 전문의 중에서도 척수장애를 모르는 의사들이 많다. 따로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지체장애인에는 척추장애, 근육장애, 절단 등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중 척수 한 분야만 해도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전문적인 임상경험이 없는 의사가 짧은 교육으로 척수장애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차장은 “지방에 사는 장애인 중에는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이라는 취지를 생각한다면 주치의제도 보다는 차라리 이런 분들이 방문진료나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제도의 면면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주장애관리의사와 일반건강관리의사로 나눈 현재 모델이 나온 배경에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에 대해 일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서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는 이달 내로 장애인 건강주치의추진위원회 산하에 평가전문위원회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시범사업 과정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