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방 백혈병 환자 슈릭, 본국서는 치료못해 '막막'

강제추방 백혈병 환자 슈릭, 본국서는 치료못해 '막막'

10년 전 불법체류 불거져 이달 말 떠나야…의료진 "어렵게 겨우 살려낸 환자, 우즈벡 돌려보내면 생명 위협"

기사승인 2018-05-18 05:00:00

“막막합니다. 어떤 날은 갑자기 열이 올라 몸이 떨리고 어떤 날은 폐에 물이 차서 응급실에 실려 옵니다. 당장 나가야 하는데, 그 나라는 내 병을 모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백혈병 환자 라크마토 쇼코라트존(42·이하 슈릭)씨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어렵게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치료에 매진하고 있는 그에게 지난 3월 출입국사무소는 추방 명령을 내렸다. 10년여 전 불법체류 사실이 문제가 된 것.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슈릭씨와 가족들은 이번 달 말까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슈릭씨가 돌아가야 하는 우즈베키스탄에는 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할 의료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의료진은 슈릭씨가 당장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한지 20여년 된 외국인 사업자 슈릭씨는 지난 2016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을 받았다. 어려운 주머니 사정으로 치료를 미뤄온 탓에 만성골수성백혈병이 급성으로 악화돼 있었고, 여러 표적항암제에도 불응해 면역세포 생성이 더디는 등 백혈병 중에서도 고위험 수준의 환자였다. 경제적 상황도 어려워 골수이식에 드는 막대한 수술비 문제도 치료를 가로막는 벽이었다.  

다행히 슈릭씨는 이듬해인 2017년 1월경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무사히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슈릭씨의 어려운 사연을 전해들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우 모임 루산우회와 쿠키뉴스 독자 등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1000만 원가량의 수술비용을 충당한 것이다. 소외된 외국인 환자에게 새 삶을 선물한 따뜻한 사연으로 회자됐지만, 고위험 환자가 수술 한 번으로 마법처럼 낫는 일은 없다.

백혈병 환자의 회복기는 길고도 잔인하다. 표적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상황에서 이식을 했기 때문에 재발가능성이 높고, 면역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이 안정되기까지 빠르면 10년, 길면 20년으로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주치의 김동욱 가톨릭대 혈액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슈릭은 현재 암세포에 대한 재발가능성은 많이 줄었다. 다만 면역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이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기적으로 유전자검사를 해서 면역반응을 확인하고 합병증을 관리하는 고도의 예민한 치료 과정이 남아있다. 적어도 10년에서 15년은 지켜봐야 안정기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즈벡에서는 슈릭같은 백혈병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골수이식 경험이 풍부하지 않을뿐더러 여러 표적항암제에서 실패하고도 이식에 성공한 환자사례가 거의 없다”며 “어렵게 겨우 살려낸 환자를 돌려보낸다는 것은 의료진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반열에 올라온 선진국인만큼 인권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슈릭은 현재 면역반응으로 인한 합병증 관리를 위해 외래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의료진은 한 달 또는 2주에 한 번꼴로 병원을 찾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몸 상태가 가변적이라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오거나 예정보다 빠르게 병원을 찾는 날이 많다.

슈릭씨는 “이식 수술을 받은 후 5번 정도 응급실에 실려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히 회복해서 아이들에게 가장 노릇을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무조건 떠나야 한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도 죄(불법체류)를 인정한다. 하지만 벌금같은 다른 처벌로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만 괜찮다면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막막할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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