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료비 못 내는 환자, 치료 안 해도 되나요?

[기자수첩] 진료비 못 내는 환자, 치료 안 해도 되나요?

기사승인 2018-06-09 04:00:00

자본주의체제에서 ‘돈’은 매우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윤이 있어야 부를 쌓을 수 있고, 쌓은 부로 성장할 수 있다. 이윤이 없다면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적자가 나는 기업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비용을 최대한 줄인다.

민간의료 인프라가 전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른 국가보다 의료수가가 현저히 적다는 이유로 대신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겠다며 ‘3분 진료’ 관행을 만들었다. 진료비를 더 받기 위해 과잉진료를 시행하는 의사들이 생겨났고, 비급여라는 이름으로 진료비를 청구하는 곳도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이기적’인 행위라고만 보긴 어렵다. 자본주의에서 의사는 직업이다. 의사들도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됐다. 다른 국가에 비해 의료수가가 낮은 것은 사실이고, 의사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의사윤리’라는 책임 아래 최대한 적정진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곳도 많다.

그러면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을 진료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생명권과 자본주의 논리 중 어느 것이 우선이 돼야 하는지 묻는 이유는 아직까지 환자의 ‘경제적’인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감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재이송한 병원 중 병원 내 가용병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가 36.5%나 됐다. 환자의 ‘경제적’인 사정을 이유로 재이송한 건수는 200건에 달했다. ‘경제적 사유로 인한 재이송’ 건은 ▲환자 미수금 존재 ▲본인부담금 등 의료비 지급능력 부족 ▲외국인 ▲원무과 접수 거부 ▲행려 등의 사유가 구급활동일지에 기재된 건을 의미한다. 사례를 보니 2015년 서울 동대문 인근에 있는 119구급대원이 가슴통증 및 호흡곤란을 호소한 환자를 가장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에 이송했지만, 해당 병원 원무과에서 선납금 미납을 이유로 접수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차 이송시간으로부터 약 43분이나 경과하고서야 다른 의료원으로 재이송했다. 

경기도 안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안양의 한 119 구급대가 경련을 일으킨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병원 측에서 행려환자(行旅患者)로 판단된다며 접수를 거부했고, 가슴통증을 호소한 환자 역시 행려환자는 진료가 불가하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의사가 될 때 선언하는 히포크라테스 의료윤리지침에도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는 철학은 녹아있다. 그리고 응급의료비 미수금으로 인한 병원의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응급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심지어 이 제도는 국민은 물론 불법체류자, 외국인도 대상이 된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가 응급의료비 미수금 대지급 제도 기준에 적용되지 않는 경증의 응급환자일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도 “그러나 그 기준에는 일반적인 응급증상이 포함된다. 또 제도 이용률을 보면 병원에서도 진료비를 받기 위해 제도를 더 이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응급환자를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미수금 대지급 제도 기준에는 일반적인 응급증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행려환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한 것을 보면 “단순히 환자의 ‘경제적’ 능력만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정확한 이유, 병원의 입장에 대해 더 취재를 해 봐야겠지만, 병원의 경제적 이유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무언가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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