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사, 액셀은 오른쪽이에요” 인공지능이 최근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아님에도 나를 ‘김여사’라고 불렀다. 육아서적 추천을 부탁하자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한 리스트”라며 책 소개를 읊었다.
이는 가상의 이야기다. 그러나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16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운영한 인공지능(AI) 채팅봇 ‘테이’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이들은 모두 죽은 뒤 지옥 불에 던져져야 한다”는 글을 SNS에 게재해 논란이 됐다. 일부 네티즌의 편향된 대화 내용을 학습한 탓이었다. 지난 1월 구글 검색은 위안부 피해자 고(故) 문옥주씨의 직업을 ‘매춘부’로 표기해 논란이 일었다. 구글 측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생성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온라인에 만연한 성차별 단어…유머로 소비·전파도 빨라
성차별 단어는 온라인상에 방대하게 퍼져있다. 정확한 시초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부 연구자들은 지난 1999년 군가산점제 위헌 결정을 기점으로 본다. 당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이화여자대학교(이대) 학생들에게 사이버 성폭력 및 테러가 빈번히 발생했다. 이후 이대는 페미니스트(여성주의) 집단으로 불리며 조롱당했다. ‘안티 이대’ 카페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다.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를 뜻하는 ‘페미’가 욕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에는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개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떠나 논란이 됐다. 이른바 ‘개똥녀 사건’이다. 이를 시작으로 프랜차이즈 커피를 소비하는 여성을 ‘된장녀’, 키 큰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을 ‘루저녀’로 부르는 등 여성에 대한 멸칭이 온라인에 등장했다.
온라인상 성차별적 언어는 유머로 소비, 더욱 쉽게 전파됐다. 여성은 운전이 미숙하다는 편견에서 기인한 김여사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자동차가 분리수거함을 올라탄 사진에는 ‘분리수거하는 김여사’, 옷가게를 들이받은 차에는 ‘쇼핑하는 김여사’라는 제목이 달렸다. ‘김치녀(한국여성 비하)’와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을 희화화하는 게시글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아프리카 TV 타고 퍼진 성차별 언어…실생활로 번지기도
온라인상의 성차별 단어는 성차별 ‘언어’로 진화했다. 영상 게시물의 보편화와 이용자 간 소통이 원활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유튜브와 아프리카 TV 등의 영상플랫폼을 통해 성차별 언어는 재생산·소비됐다.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아프리카 TV를 6주간 모니터링한 결과, 방송시간 10분 동안 나타난 성차별적 발언 수는 평균 8.4건에 달했다. 한 여성 BJ의 방송에서는 10분 만에 63건의 성차별적 채팅이 쏟아졌다. 채팅 내용 중 ‘여자는 외모가 능력이다’ ‘예쁘면 봐준다’ ‘갈수록 못생겨진다’ ‘싸보인다’ 등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은 80%에 달했다.
온라인상 성차별 언어는 실생활에도 등장한다. 아프리카TV 유명 BJ ‘보겸’은 자신의 이름과 ‘하이루’를 합쳐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부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본래의 뜻 대신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섞어 사용한다. 음란물에서 유래된 ‘앙 기모띠’와 욕설로 사용되는 ‘응 니 애미’ 등도 청소년 사이에 퍼져 있다. 이는 여성에게 성적수치심을 주거나 여성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성차별 언어로 볼 수 있다. 지난달 13일에는 ‘보이루를 쓰지 말자’라는 대자보를 붙인 여자 중학생이 또래 남학생들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
▲‘익명성 가면’에 숨어 난무하는 온라인 성차별…“규제 어려워”
성차별 언어는 온라인이라는 익명성에 기대어 급증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제출된 ‘차별·비하 정보 심의 및 시정 요구’는 지난 2012년 149건에서 지난해 2455건으로 늘었다. 성 비하 발언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격 모독 등이 다수 포함됐다.
규제는 요원하다. 특정인을 지칭해 비하할 경우 명예훼손·모욕죄로 처벌받지만, 온라인상의 성차별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 2월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보수단체의 반발로 철회됐다. 온라인상 성차별·혐오 표현 제재는 방심위의 관할이다. 다만 방심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제재는 게시글의 삭제를 사이트 관리자에게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온라인상 성차별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규제가 쉽지 않다”면서 “일정 수준을 벗어난 성차별 언어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형벌로 처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그래픽= 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