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대신 사람 빨아들인 크린넷…3개월 지났는데 대책은?

쓰레기 대신 사람 빨아들인 크린넷…3개월 지났는데 대책은?

쓰레기 대신 사람 빨아들인 크린넷…3개월 지났는데 대책은?

기사승인 2018-08-0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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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이었다는데 너무 안됐어요. 쓰레기 버릴 때마다 그 끔찍한 사고가 생각나요” 

‘크린넷’(쓰레기자동집하시설)은 투입기에 넣은 쓰레기를 최고 시속 70㎞의 속도로 빨아들여 지하 집하장으로 이동시키는 장비다. 진공청소기와 원리가 같다. 최근 크린넷 관련 사고가 잇따르며 안전 문제가 제기된다. 인명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대책은 전무해 시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 주민 목숨 위협한 크린넷, 지난 4월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2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카페거리에서 고장난 크린넷을 점검하던 수리기사 조모(38)씨가 숨졌다. 공기가 새는 원인을 찾기 위해 일반쓰레기용 100L 투입구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는데, 흡입기가 작동하며 빨려 들어간 것. 70~80kg의 남성도 크린넷의 흡입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기계 결함이나 오작동이 아닌 작업 실수라고 결론 내렸다. 시는 사고 발생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5월21일부터 크린넷 가동을 재개했다. 

비슷한 사고는 3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5년 9월 파주 운정신도시 A 아파트단지. 이곳 경비원이 100L 투입구를 수동으로 열다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다행히 작동이 멈춰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비원은 지금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크린넷은 고장이 잦기 때문이다. 투입구를 열 때 필요한 RF(Radio Frequency) 카드 인식 오류가 대표적이다. 내부가 가득 차면 쓰레기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거나, 닫힘 버튼을 누른 뒤에도 투입구가 열려있기도 한다. 대전, 파주, 판교신도시에서도 크린넷은 오작동이 빈번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일례로 운정신도시 한 아파트 단지는 2년 동안 무려 493차례에 걸쳐 고장이나 주민 찬반 투표로 기계를 폐쇄했다. 

▲ 200만 세대 사용하는데…설치·안전기준 없어

크린넷은 남양주, 김포 한강, 성남 판교, 세종시 등 수도권 2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전국 200만 세대가 사용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시설설치 및 안전관리 기준이 따로 없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르면 크린넷은 폐기물 처리시설로 분류돼있지 않다. 폐기물 관리법은 폐기물 처리시설을 중간처분시설, 최종 처분시설, 재활용시설로 정의한다. 크린넷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즉 민간에서 자체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지자체별로 조례에 따라 운영하고 있으나 기준이 달라 효율적 설계 및 시공이 어렵다.

남양주 사고 발생 3개월이 지났으나 안전 대책은 미흡하다. 달라진 것은 두 가지다. 우선 100L 투입구 지름이 47cm에서 37cm으로 줄어들었다. 취재 결과, 투입구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노약자나 아이가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운정신도시의 경우,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음에도 투입구 축소 조치 없이 운영되고 있다. 

반사경도 설치됐다. 관 형태의 크린넷 구조 상, 고장 시 내부 관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사경만으로는 안을 들여다보기에 역부족이었다. 

주민 역시 불안을 호소했다. 우모(38)씨는 “전에는 아내가 쓰레기를 버렸는데 사고 이후부터는 내가 하고 있다”며 “투입구를 여는 것 자체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방문한 사고 현장에는 추모를 위해 놓아둔 꽃 대신 주민이 두고 간 쓰레기봉투가 한가득 놓여있었다. 

▲ 남양주시 "전혀 위험한 시설 아니야"…부처는 책임 떠밀기만

남양주시 관계자는 “크린넷은 전혀 위험한 시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투입구 크기를 줄인 것은 안전 대책이 아니라 주민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추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은 사고 직후 ‘전국적인 실태점검과 함께 안전대책 수립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나온 대책은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토부, 환경부, 고용부, 남양주시가 한 차례 회의를 했다”며 “소관이 환경부로 정해지고 이관된 뒤에는 진척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크린넷은 폐기물 처리시설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모 정책관은 “크린넷은 엄밀히 말해 주민들이 도입해 달라고 해서 설치한 사유시설”이라며 “국가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맞는지 내부 논의 중”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전문가들은 크린넷 안전 검사 실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홍수열 자원사회순환경제연구소 소장은 “투입구 크기를 줄이는 것은 근본적 해결 방안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홍 소장은 “오작동과 관련한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성인 남성이 빨려 들어가기 충분한 흡입력은 그대로다. 투입구가 열려있는 고장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전수 조사를 하고 안전 검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크린넷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지자체는 인수를 꺼리고, 환경부는 폐기물 처리시설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시민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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