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용산참사 진압 강행…靑 ‘강호순 물타기’ 지시도”

“경찰, 용산참사 진압 강행…靑 ‘강호순 물타기’ 지시도”

기사승인 2018-09-05 14:27:07

경찰이 용산 참사 당시, 화재 위험을 알고도 무리하게 경찰력을 투입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5일 지난 2월부터 벌인 용산 참사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용산 참사는 지난 2009년 서울 용산재개발사업 관련 시위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진상조사위는 용산 철거시위 현장에 안전장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는 100톤 크레인 1대, 소방차 2대만 있었다. 작전계획서에 명시된 대형 크레인 2대, 컨테이너 등은 설치되지 않았다. 에어매트, 고가사다리차, 화학 소방차 역시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 2005년 오산세교지구 망루농성진압작전에서 소방차 23대가 배치됐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경찰은 용산 현장진입 때 망루 진입 방법, 망루 구조 분석, 화재 발생 등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며 “진압작전계획에 명시됐던 사전 예행연습을 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특공대 제대장은 경찰특공대장으로부터 “작은 크레인이 1대만 준비됐다”는 통보를 받고 작전연기를 건의했지만 묵살됐다. 제대장은 “당시 서울청 경비계장이 ‘겁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거 아냐’라는 식으로 (요청을) 거절했다”고 진상조사위에 진술했다.

경찰특공대가 옥상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등 저항하는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다. 그런데 특공대원들은 소화기를 교체하지도 못한 채 2차 진압에 투입됐다. 경찰특공대의 2차 진압 후 2차 화재가 일어났고 그 결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진상조사위는 “1차 진입 후 망루 내에 인화성이 강한 ‘유증기’가 가득 찼고 경찰특공대에 배정된 소화기가 상당 부분 소진된 상황이었다”며 “이런 상황 변화를 외면하고 2차 진입을 강행한다는 것은 경찰특공대원들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수행”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은 사고 이후에도 ‘댓글 조작’을 통해 경찰공권력 옹호에 힘썼다.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사항’ 문건에는 전국 사이버수사요원 900명에게 인터넷 사이트 여론을 분석하고 게시글에 대해 1일 5건 이상 반박글을 올리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이명박 청와대는 용산 참사에 쏠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이용하라고 경찰에 지시하기도도 했다.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모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군포연쇄살인사건은 강호순이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아내를 살해한 이래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7명의 여성을 연쇄 납치해 살인한 사건이다. 강씨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09년 1월24일 검거됐는데 다수 언론이 그간의 관행과는 다르게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등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진상조사위는 이날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경찰에 지휘부 지휘 잘못에 대해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사망한 철거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또 경찰의 조직적 온라인, 오프라인 여론 조성 활동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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