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의 해결방안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통합이라는 방식으로 가닥 잡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두 집단을 대표하는 단체 간 의견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회가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어 논란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는 ‘2차 의한정협의체’를 개최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1차 회의가 파행된 후 10개월여 만이다. 2차 회의 또한 국회의 요구로 성사됐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지난해 9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 자격범위 확대’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여당과 야당 모두에서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당시 복지위는 협회 간 합의가 선행돼야한다며 논의를 주문했고, 협의체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복지부가 참여한 1차 회의는 별다른 소득없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이에 법안을 발의했던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최근 열린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재논의를 촉구했다.
국회가 사안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에 복지부가 대안을 내놨다. 의협에서 현대의료기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이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만큼 2년 여전까지 논의됐던 면허통합 속칭 ‘의료일원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
면허를 통합하면 교육 또한 이뤄질 수 있으며 연일 부딪치는 의료계와 한의계 관련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데다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됨에 따라 내부문제로 돌릴 수 있고, 복지부로서는 정책적 책임을 더는데다 손해나 부담이 적다는 등의 셈법이 받아들여졌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실제 이 같은 복지부의 숨은 의도는 통하는 듯 보인다. 과거 합의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이 도출된 ‘의료일원화 합의안’을 기초로 2차 의-한-정 협의체 회의가 진행됐으며, 논란 속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협회들 내부에서 중지를 모아 복지부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 될 만큼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최초 합의안에 포함된 일부 논점들에 대한 추가적 논의가 필요해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의료일원화, 가야할 방향… 가로막는 쟁점은?
2차 회의에서 의료계와 한의계가 검토한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알려졌다. 2030년까지 면허체계를 하나로 합쳐 의-한 통합면허자를 배출하는 것과 이를 위해 2024년 이전에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 통합 및 의학전문대학원에서의 한의사 교육 등이다.
여기에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기존 면허를 가진 이들의 통합 후 거취문제다. 한의사들의 의학교육만을 의무화할지, 쌍방의 교육을 모두 선택적으로 할지, 교육을 받지 않고 한의사의 지위를 인정할지 등에 대한 한의계와 의료계 내부에서 각각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원화 자체에 대한 반대나 통합에는 찬성하지만 현대의학 중심으로 재편돼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통합시기가 너무 빠르다거나 한의학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의협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너무 민감한 사안이다.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국민과 한의사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한다”면서 “아직은 사안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아직 합의가 이뤄진 단계가 아니다. 정해진 것은 없다. 2년 전 의료기기 논의를 하며 이야기가 있었고 이원화 체계로 인해 파생된 문제가 있어 국민들에게 최선의 입장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의협 또한 “오랫동안 끌어왔던 건이고, 당장 의료기기 문제를 국회로 넘기더라도 의료일원화를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향적인 검토를 의협에게 당부하고 있다”며 “교육시장의 혼란이나 기존 면허자의 거취문제 등을 풀기 위한 세부적인 논의가 더 이뤄져야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이원화된 시스템에서 서로 간의 업무범위를 지나치게 빡빡하게 조정한 것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사회적 문제도 많았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사회적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의학의 발전과 국민건강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정부의) 의지도 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학 중심으로의 재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협회가 바라는 방식은 중국식 이원적 일원화”라며 “한의학과 의학의 장점을 모두 살리며 국민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복지부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협의체의 간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여러 가지 안을 놓고 이야기한 것 뿐이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합의된 것도 없다. 아직 논의돼야할 쟁점들이 많다”면서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는 당초 의-한-정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 자체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데다 구체적인 방향은커녕 의료계와 한의계의 의견차가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한다는 느낌을 줄 경우 의료계와 한의계 양측의 공세가 집중될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의도일 것”이라며 “대의 차원에서 의료일원화는 가야할 방향이라는 중론이 모아지도록 분위기를 형성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