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과 전통의학으로 나뉜 국내 의료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다시금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와 한의계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렇다 할 대책이나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두 직역 간 극한대립이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 이하 한의협)는 12일 긴급기자회견을 가졌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의료계의 ‘갑질’을 막고, 국민 건강과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특히 지난 10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한방 부작용 무개입 ▶한의학 안전성 및 유효성 검증 ▶한방제도 등의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기자회견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역사와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의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스스로의 잘못이나 문제는 생각지 않고 남을 탓하고 헐뜯는 행위라는 지적이기도 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이해나 정보도 없이 오해와 편견, 자신이 옳다는 아집만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통합 일명 ‘의료일원화’ 합의과정과 한의학 역사에 대한 의협의 왜곡을 바로잡았다. 과거 의-한-정 협의체에서 2015년 만든 합의문 초안을 기초로 최대집 회장이 직접 요구해 문항을 3개로 나누고 문구를 수정해 합의 하에 최종안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에서 의사는 한의사 였으며 개화기 당시 전통의학(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융·복합에 대한 시도가 이뤄졌지만, 일제강점기 전통말살의 일환으로 한의학이 핍박받으며 지금의 현대의학 중심 의료체계가 갖춰졌다고 바로잡았다.
약침과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문제도 현대의학에 기초한 질병분류명에 따라 진단을 내리고 있는 한의사가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도구로 법에서 허용한 면허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일부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를 위해 한의학 교육과정의 70%는 조직학, 병리학, 약리학, 진단학, 해부학 등 현대의학에 기초한 의학적 지식과 치료법으로 채워져 있으며 진정한 통합의사로서의 기초를 다지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최혁용 한의협회장은 “한의사는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함께 배우는 의사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엑스레이(X-ray) 등 진단기기 사용을 두고 합법과 불법을 따지는 곳은 우리나라 한 군데 밖에 없다”며 “과도한 독점을 끊고 갈등이 아닌 경쟁을 통한 발전을 꾀해야한다”고 말했다.
의료가 현대의학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제도나 정책이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직역 간의 갈등 속에서 국민의 건강은 외면 받고 선택권은 제한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와 의료계, 사회를 상대로 6대 요구사항과 4대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보건복지부를 향해 협의체 합의 불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당초 협의체 구성의 목적이었던 현대의료기기 논란 해결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 논의를 국회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둘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 책임자 선정과 관련 현실과 규정상의 괴리를 개선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 이원화제도의 개선을 위한 후속연구를 즉각 시행하고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의료체계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장애인 주치의제, 치매국가책임제, 만성질환관리제, 커뮤니티케어 등 정부정책과 추진 중인 제도에 한의사의 참여와 역할을 검토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한의사를 포함해 2.3명, 한의사를 뺀 1.8명에 불과한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를 OECD 회원국 평균 3.3명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대폭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나친 직역간 비방과 욕설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펴가길 바란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한편, 한의협은 자체적으로도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5종의 의료기기를 포함해 검사진단기기의 적극적인 활용 및 건강보험 등재 ▶면허범위에 속한 물질의 주사제 약침시술 도입 ▶천연물 유래 의약품에 대한 보다 활발한 처방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 본연의 역할과 책무에 성실하며 이를 위한 응급의약품 한의의료기관 내 비치를 추진하겠다는 실천의지를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