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복지시설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 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30여년만의 사과였습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16일 오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오 시장은 “세월이 지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잊혔지만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라며 “늦었지만 누구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같은 날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도 “시의회 차원에서 참혹한 진상을 밝혀 피해 생존자와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고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1975년부터 87년까지 부산 사상구 형제복지원에서 대규모 인권침해가 벌어진 일을 말합니다.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에 근거, 시민 3000여명 이상이 감금돼 강제노역을 당했습니다. 퇴근길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회사원, 부모와 생이별해야 했던 아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내에서는 아동학대와 폭행, 살인이 빈번하게 이뤄졌습니다.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합니다. 일부 시신은 암매장됐고, 유족의 동의 없이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89년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원장인 박인근에게 고작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횡령 혐의만이 유죄로 인정된 것입니다.
한종선씨 등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은 지난 2012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습니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도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드디어 검찰이 응답했습니다. 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13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비상상고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습니다. 문 총장이 이를 수용, 비상상고를 신청하면 대법원은 사건에 대한 재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책임자들에게 죗값을 다시 묻게 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공식 사과와 비상상고 권고 등 사건 해결을 위한 진전을 이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현행법으로는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피해자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죠. 피해 생존자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실태조사 및 상담창구 개설, 제2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막을 인권조례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묵묵부답입니다. 지난 2014년 형제복지원 관련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심의를 미루다 회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지난 2016년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국가 사과만으로는 형제복지원의 상흔을 치유하기 힘듭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형제복지원 원장을 비호했다는 의혹까지 있죠. 진정으로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과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입니다. 300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국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