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정리된 개인의 진료정보가 온라인 공간인 ‘클라우드’에 모이고, 인공지능이나 각종 기술을 통해 이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분석해 의사가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도록 돕거나, 희귀·난치질환 치료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환자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정보이용에 동의하고, 이용현황을 파악해 차단할 수 있는 사회, 근시일내 구현될 미래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할 크고 높은 장벽이 하나 있다. 민감정보로 분류되는 개인건강정보의 활용과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이다.
고려대학교의료원 이상헌 정밀의료사업단장(재활의학과 교수, 사진)은 18일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과 정보보호’를 주제로 열린 의과대학 개교 90주년 기념 2번째 심포지엄 ‘의학과 법’에서 정밀의료를 위한 IT 인프라 플랫폼을 구축하고, 병원의 운영·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P-HIS)’을 조만간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장에 따르면 클라우드형 병원정보시스템은 10월까지 개발을 완성된다. 이후 연내 테스트를 마치고 2019년 임상현장에 도입해 현장테스트와 시범적용을 거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이듬해인 2020년 시스템이 보급·확산된다.
시스템 개발에는 삼성SDS, 네이버와 같은 전자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을 비롯해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가천대길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에스케이 씨앤씨(SK C&C), 뷰노(Vuno), 와이즈넛(Wisenut) 등 인공지능(A.I.) 기반기술을 갖춘 기업들도 힘을 합쳤다.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단순히 정보의 집합이 아닌 ▶감염병 최적 항생제 및 유전체 AI 항암제 추천 ▶영상자료 자동판독 ▶만성질환 관리챗봇 또는 자동수액주입기 개발 등 개인 맞춤형 의료서비스, 다른 말로 ‘정밀의료’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단장은 “전문가들은 인류를 위협할 가장 위험한 적으로 슈퍼박테리아를 꼽는다. 이를 가장 잘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내성이 가장 적게 생기는 항생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과 전문의라고 해도 항생제 내성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감염내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아야만 한다”면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면) 이와 같은 어려움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법적 한계나 제한을 풀고, 여전히 충돌하고 있는 개인민감정보 활용과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하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불분명하거나 모순된 규정이나 조항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풀리지 않는 ‘보건의료 민감정보’ 활용방안
이 단장은 현재 개발하고 있는 클라우드 기반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P-HIS)의 실현을 위해서는 15가지 개인정보 관련 문제 및 법률적 논란을 해결해야한다고 봤다. 여기에는 ‘개인정보의 정의 및 범위’라는 기본적인 전제까지 포함됐다.
정의 및 범위 외에도 P-HIS와 관련해 발생가능한 문제로 그는 ▶개인정보 수집정차상 사전동의 ▶보건의료정보의 제3자 제공 또는 목적 외 이용 ▶공공기관의 보건의료정보 제공 ▶공공기관의 저작권 관련 논란 ▶개인정보 파기관련 문제 ▶정보의 국외 이동 가능여부를 꼽으며 기본적인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논란들이 관련 법 등에서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 클라우드 보관 가능여부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 표준화 및 외부 저장 문제 ▶민간업체의 공공기관 대상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가능성 문제 ▶공공기관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시 문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관련 논란 ▶유전체 분석의 표준화 및 법적 한계 ▶해외진출 등도 언급했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의료법 혹은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살펴볼 때 전자의무기록의 외부보관은 가능하지만 클라우드를 허용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게다가 대부분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이 표준화돼있지 않고, 환자정보공유를 원치 않는 곳들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기술적으로도 정보보호를 위한 안전성 확보조치가 완벽하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최신 기술이라는 유전체 분석과 관련해서는 유전자치료 연구범위가 생명윤리법 상 제한돼있어 원활한 연구가 어렵고, 유전자검사도 일부항목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유전자검사 결과 표준화에 대해서는 관련법이나 규정이 없고 유전자 차별 관련 법적 실효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 기초부터 흔들리는 개인정보보호… 느긋하기만 한 정부
문제는 기본적인 법적 근거나 사회적 기반마저 흔들리는 현 상황에서, 연구목적을 위해서는 개인건강정보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학계와 정보유출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규제를 먼저 갖춰야한다는 시민사회가 20여년째 충돌하며 아직도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느긋하기만 하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사진)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의료정보 정책이나 제도, 법적인 내용들을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방적으로 진행한 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나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의견을 들어 정리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보고 정책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토론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시범사업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사업 ▶국민 데이터 주권찾기(MyData) 사업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진료정보 관련 사업 등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과제 5가지를 언급하며 “기술의 진보에 발맞춘 제도적 근거나 뒷받침이 조금 더 잘 돼야한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고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보호나 활용 모두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세부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인정보의) 모두 활용이나 모두 보호가 아닌 건설적 논의를 통해 발전해나가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길 바라고 있다”며 개방된 논의구조에서의 합의도출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심포지엄에 참여한 한 의대 교수는 “정부는 개인정보의 활용이냐 보호냐, 공익이냐 사익이냐와 같은 거대 담론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정보는 당장 우리 병원에서 익명화를 해야하고, 진료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공유해야하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분야로 많은 부분이 논의에서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너무 위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밑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은 소홀하고 너무 담론에 대해서만 토론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세계에서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끌고 가야할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시간표를 작성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길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업이나 방향을 설정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소비자단체 대표도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그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의 방식이나 정의, 범위도 그때마다 달라지고 보완돼야한다.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며 논쟁만을 벌이는 동안 기술발전은 뒤처지고 국가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라며 “활용이냐 보호냐를 두고 20년간 이어온 결론 없는 논쟁만 지속해서는 답이 없다”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