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을 탈출했다가 사살된 8살 퓨마 ‘뽀롱이’가 촉발한 동물 권리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9일 국립중앙과학관이 퓨마를 박제해 전시하겠다며 사체 기증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퓨마 죽음에 애도를 표하던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은 분노했습니다. “죽어서까지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인간들이 잔인하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청원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앞서 사람의 실수로 문이 열렸고, 동물이 사육장을 탈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꼭 죽여야만 했냐는 비판이 한차례 있었죠.
뽀롱이는 지난 18일 오후 5시10분 열린 문을 통해 사육장을 나왔습니다. 사육사가 잠금장치를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뽀롱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창 밖을 나온 탓일까요. 그는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뽀롱이는 4시간30분 만에 동물원 내 뒷산에서 전문 엽사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최초 탈출 신고 후 1시간 30분 만에 동물원 내에서 웅크린 채 발견됐으나 마취총을 맞고도 달아나자 사살이라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다행히 부정 여론을 인식한 듯 대전오월드를 관리하는 대전도시공사 측은 같은날 “퓨마 사체를 국립중앙과학관에 기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전도시공사 동물관리팀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도대체 누가 뽀롱이를 박제할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박제는) 퓨마를 두 번 죽이는 일”라고 말했죠. 또 뽀롱이 사체는 일단 ‘소각 또는 매립’으로 지난 18일 관할 환경청에 신고했고, 현재 지침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물에 대한 윤리 논쟁까지 불붙었습니다. 동물원 폐지나 동물원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지난 18일 올라온 “동물원을 폐지해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 게시물은 20일 오전 기준 5만명이 서명했습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바로 지난달에는 서울대공원의 아시아 코끼리 ‘가자바’(14세·수컷)가 돌연 숨졌습니다.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코끼리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해 발 상태가 좋지 않고 운동 부족으로 관절염을 많이 앓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동물단체들에 따르면 국내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코끼리들이 정신질환의 일종인 정형행동(동물의 목적 없는 반복행동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함을 보여줌)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물원뿐만이 아닙니다. 라쿤카페, 반려동물 카페 등 소규모 야생동물카페에 있는 동물들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야생동물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좀은 실내공간에 몰아 넣거나, 종이 다른 동물끼리 합사한 탓이죠. 또 낯선 이들의 손길도 동물에게는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동물카페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동물원 기준은 10종, 50마리 이상이라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물권단체 ‘케어’ 측은 지난 19일 SNS에 “야생동물을 가두어 놓고 인간의 볼거리용으로 고통을 주는 전시행위는 사라져야 한다”며 “자신이 있어야 할 야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 퓨마에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단체는 또 ‘#동물원가지않기’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는 중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동물들의 생명 존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개를 도살할 때 전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며 1,2심 무죄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반려견이라는 달라진 사회통념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동물권단체들은 “동물권의 승리”라며 결정을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또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국가는 동물 보호를 위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습니다.
관광객과 입맞춤시키기 위해 이빨이 몽땅 뽑힌 돌고래. 관광객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은 악어. 동물쇼 훈련 과정에서 심각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 돌고래, 바다사자, 원숭이까지.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또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욕심이고 이기적 행동이 아닐까요. 동물 권리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