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을 감시하고, 사전에 예방하거나, 사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는 기관이지만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의 인력이나 전문성의 문제를 언급한다. 전 세계에 분포한 모든 질병을 관리할 수는 없더라도 국내에서 유행하거나 종종 발병하는, 그리고 위험성이 높은 질병에 대해서는 꾸준히 감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함에도 능력이 부족해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인력이나 전문성 부족도 문제지만 “의지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감시체계가 갖춰져 운영되고 있는 질병만이라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관리해야하는데, 매번 소홀하고 놓치기 일쑤인데다 ‘사후약방문’식 대처에만 급급하다는 질책이 섞여 있었다.
특히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고 눈에 보이지 않아 감시나 대처가 어려운 감염병과 달리, 자주 발생하고 심각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야기하는데다, 감시나 관리를 통해 충분히 예방가능하고 진료비도 줄이는 일조차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사태를 키운다고 질타한다.
‘병원감염’, 공식 용어로 ‘의료관련감염’ 얘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 관계자 A씨는 “적어도 병을 고치기 위해 가는 병원에서 최소한 병을 얻고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2006년 질본이 지원해 시작한 ‘전국의료관련감염 감시체계(KONIS, 코니스)’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 혈세 들어간 KONIS는 국가소유? 민간소유?
이 관계자는 코니스 운영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전국 2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병원 안에서 발생하는 감염문제인 ‘의료관련감염’을 감시하고, 예방 가능한 감염문제를 대처하기 위해 국민 세금이 투입된 사업이 민간에 귀속된 사유재산”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의료감염학회의 전신인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2013년 7월 9일 제정한 ‘전국의료관련감시체계(KONIS) 운영규정’ 1조에는 ‘본 감시체계는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산하 감시체계로서 전국의료관련감염감시체계라 칭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KONIS가 법정단체가 아닌 학술연구모임에 귀속돼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규정 제6조에는 ‘KONIS의 재정은 연구비, 기금 및 기타 수입금으로 충당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해마다 질본에서 전국 의료관련감염 현황파악 등을 위한 연구용역을 학회 소속 운영위원장에게 지급하고, 이를 연구자가 학회로 반납해 코니스가 학회 차원에서 운영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학회는 코니스를 1995년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구,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가 설립되며 미국 CDC NNIS(질병관리본부 병원감염감시체계)를 본 따 만든 전국단위 의료관련감염 감시체계로, 2006년 질병관리본부와 학회의 노력으로 공식 출범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미나 학회장(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코니스는 명실 공히 전국단위 감시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의료기관 대부분이 참여하는 코니스는 신뢰도 높은 벤치마킹 자료를 제공해 국내 감염관리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적용범위와 의료기관 참여를 확대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회 관계자 또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해마다 연구용역을 받아 운영하는 사실상 위탁사업형태”라며 “중환자실의 경우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가 2006년부터 쭉 운영해왔고, 수술부위감염의 경우 2015년도와 2016년도 2년간은 대한외과감염학회가 운영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우리(의료감염학회)가 운영 중이다. 문제될 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질본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질본 관계자는 “코니스는 위탁사업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매년 과제를 발주해 1년간 수행하는 용역과제”라면서도 “학회의 과제수행 절차나 운영방식까지 (질본에서) 관여하진 않는다. 인력이 충분하다면 (질본이) 직접 운영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용역과제 형태로 운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고 답했다.
◇ 환자·병원 민감정보 민간축적에, 수치만 바뀌는 결과보고서… 문제없다?
이들의 답변에 대해 A씨는 “일반경쟁입찰을 해왔다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감염관리에 대한 학술적 저변이 국내에 넓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절차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 “환자와 병원 입장에서 굉장히 민감한 정보를 학회에서 매년 축적하는 것이며 연구결과보고서도 복사, 붙여넣기 후 숫자만 갈아 끼우기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그가 보여준 비공개 연구결과보고서는 해마다 유사한 도입부와 내용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거의 한 두 문단씩 같은 글이 순서만 동일한 채 숫자만 바껴 있어 논문이었다면 표절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결과는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했다. 코니스는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의료관련감염의 빈도 등을 정리하는 감시체계이기에 돌발적인 집단감염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크게 내용이 달라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A씨는 “매년 시행이 필요한 사업은 법적 근거를 두고 법정단체 등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법정단체 위탁도 아닌, 근거도 없이 특정학회에 매년 용역을 발주하는 것은 개선돼야한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4~5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크지 않은 사업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국의료기관의 감염관리 중요성을 생각하면 넘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단위 통계와 감시체계 운영을 넘어 코니스 참여여부가 의료질평가지원금이나 감염예방관리료 등을 산정할 때 가산지표로 활용될 것이라고 정부가 발표함에 따라 공적인 성격이 더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특정 학회가 연구용역비로 예산을 쓰고 운영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회 관계자나 질본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학회 관계자는 “학회 또한 질본이 직접 운영하라고 수년째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질본의 인력구조상 직접 운영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 연구용역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연구수주가 이뤄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어 “직접 운영해도 문제다. 의료관련감염의 경우 의료기관 내에서도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정부기관이 코니스를 운영하게 될 경우 국회 등의 자료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가입 병원들의 대규모 이탈이 벌어질 수 있다”며 “안정적인 감시체계를 위해서라도 자율보고체계와 비밀유지가 법적으로 담보되기 전까진 질본에서 직접 운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건복지부 또한 (코니스를) 매년 연구용역 형태로 운영해 지속가능성과 일관된 운영에 한계가 있어 질병관리본부에 의료관련감염 발생현황과 원인파악, 자료수집 및 분석, 신고접수, 질 관리 등 감시체계 전담운영기능을 마련할 계획이라면서도 직접 운영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복사 수준의 결과보고서와 연구비의 운영비 유용문제에 대해서도 담당 부서에서 검토를 거치는 만큼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을 통해 감시체계(코니스)의 적용범위와 기관, 감시질환과 대상 등을 2022년까지 확대하고, 감시체계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활용해 정책 활용지표를 생산하는 등 감시체계 질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의료계 또한 반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 코니스 운영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