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어”VS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가선 안 돼"
12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수술실 CCTV 찬반 토론’에서는 의료계와 경기도, 시민단체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수술실 CCTV를 반대하는 의사단체는 수술실 내 불법행위가 극소수임 강조하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우려를 표했고, 여기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선 안 된다”고 응수하는 등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의사단체는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료인의 인권과 직업적 자유를 침해하고 CCTV 촬영본 유출로 사회적 피해를 야기한다고 봤다. 의사의 방어 진료를 부추겨 환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김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의사회가 수술하는 의사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의사 78%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 60%가 수술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소신진료를 할 수 없고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선량한 의사를 CCTV로 감시해 얻을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리수술을 예방하는 데 과연 CCTV가 유일한 대안인가 의심스럽다”며 “하나의 수술에 적어도 5~10명씩 들어가는 데 거기 있는 간호사나 청소하는 아줌마조차도 감시의 눈이다. 이 사람들을 무언가를 은폐하는 불법집단으로 몰아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찬성 측에서는 ‘환자의 알권리’와 ‘대리수술·인권침해 등 불법행위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신희원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경기지회장은 “환자는 생명이 하나다. 99명이 수술이 잘됐다고 하더라도 1명 수술이 잘못됐을 때 치명적인 것”이라며 “여태까지 의료사고가 났을 때 상식적인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았고, 모든 사고의 입증을 환자가 해야하는 부당함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수술받았을 때 어떤 상태였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환자의 당연한 권리다”라고 주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는 “환자들은 모든 수술의 CCTV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소송으로 번졌을 때 보겠다는 것”이라며 “정작 인권침해 피해는 그동안 환자가 당해왔다. 환자들이 촬영본 유출 우려가 있음에도 CCTV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수술실의 안전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다”라고 말했다.
대리수술을 방지할 다른 대안은 없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시민단체 모두 강도는 달랐지만 ‘처벌 강화’로 입장을 같이했다.
이동욱 회장은 “대리수술 문제는 처벌 강화로 해결될 일이다. 의사들이 강심장이라서 대리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처벌을 받는데 하겠느냐”며 “마치 CCTV가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몰아서는 안 된다. CCTV에 순기능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선동밖에 되지 않는다. CCTV가 아닌 해결책을 논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안기종 대표는 “대리수술은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 징역형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검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된다. 또 자격정지도 1년 미만까지만 가능하고 그마저도 6개월 정도 밖에 안 되고 있다”며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도입해 무자격자의 대리수술에 대해서는 면허를 영구박탈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리수술이 근본 예방을 위해서는 의료계의 저수가, PA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동욱 회장은 “의사 아닌 사람이 수술하는 문제는 PA(수술보조인력)와 연관돼있다. PA는 엄격히 말하면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다. 그런데도 복지부 굉장히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저수가 때문에 대학병원이 의사만으로 노동을 할 수 없으니 의사 자격조건 없는 사람을 쓰는 이미 만연해 있는 문제다. 또 PA의 근본원인은 저수가 때문이다. 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의료분쟁에 있어 사회적 시스템 마련도 요구했다. 이 회장은 “최근 의료분쟁에 대해 10억, 4억씩 보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는 데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보험이 없다. 의사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너무 과도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니 소극적이고 은폐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자사는 “도립의료원 입장에서는 우선 우려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봤다. 수술실 CCTV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철저하게 관리하겠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는 안 될 말”이라며 “경기도 운영 하는 의료원에 한해 내부 의사결정 거쳐 시행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도민께서 하면 안 된다, 문제 있다고 하시면 안 할 수도 있다.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이달부터 안성병원에 수술실 CCTV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총 수술건수 54건 중 환자와 의료인의 동의를 받아 CCTV를 촬영한 수술건수 24건이었다. 경기도는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경기도의료원 산하 전 병원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