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개 기관을 상대로 하는 국정감사(국감)가 후반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인지도를 높이려는 ‘한방’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국감 본연의 취지는 빛바랬습니다.
올해 국감은 지난 10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중간평가가 점점 나오고 있는데요, 후한 평가는 찾기 힘듭니다. ‘맹탕’ 국감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입니다.
김빠진 국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소품입니다. 정책 문제제기에 힘을 싣고,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소품을 보조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러나 요새 국감을 보면 본말이 전도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품만 화제가 될 뿐, 국회의원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온데간데없는 것이죠.
대표 사례는 김진태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이 가져온 벵갈 고양이입니다. 김 의원은 지난달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무조정실, 총리비서실 국정감사장에 벵갈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사건에 대해 정부 과잉 대응을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죠.
그러나 외려 ‘동물학대’ 논란이 일었습니다. 벵갈 고양이가 예민해 안정적이지 못한 환경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은 김 의원을 향해 “정치 동물쇼를 몸소 실천했다”며 “퓨마를 사살한 당국 과잉 대응을 지적하겠다면서 또 다른 살아있는 동물을 철창에 전시한 김 의원 작태는 사건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처사이자 동물 학대”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박대출 한국당 의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말 한마디를 하려 맷돌을 준비했습니다. 박 의원은 맷돌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맷돌 손잡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어처구니라고 한다”며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당연한 말을 대통령이 하는데 이게 기사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맷돌을 꼭 가지고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요. 맷돌은 단순히 ’시선 끌기’용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소품 활용이 항상 비판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신문지 2장 반을 바닥에 깔고 누웠습니다. 서울구치소 내 과밀수용 실태를 직접 보여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것과 관련해 그가 일반 수용자들에 비해 넓은 면적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죠. 박 전 대통령이 수용돼있는 거실 면적은 10.08㎡입니다. 일반 재소자들의 1인당 실제 수용면적은 1.06㎡로 신문지 2장 반도 되지 않습니다.
‘인권 침해라고 제소해야 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수용자다’ 고 노 원내대표의 메시지는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됐습니다. ‘촌철살인’ 이라는 평을 듣었던 그의 발언을 닮은 퍼포먼스에 호평이 쏟아졌죠.
국감은 행정기관 정책을 중심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입법기관 고유의 권한입니다. 20대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해 국가 정책을 감시한다는 국감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 흥미, 자극을 위한 소품 사용은 국감 격을 떨어트릴 뿐입니다. 이는 국회의원들을 향한 국민 불신을 더 깊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국감 후반전에서는 정부 실책을 날카롭게 지적해내는 결정적 ‘한방’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