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기관과 보건의료인들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고 감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나오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규제와 감시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환자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당장 수술실에서의 대리수술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막기 위해, 혹은 의료인의 과실여부를 따지기 위해 폐쇄회로화면(CCTV)를 운용해야한다는 목소리에 의사들은 ‘불가(不可)’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환자의 인권과 사생활, 개인정보 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23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술실 CCTV 설치의 필요성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질문에 본인이 산부인과 의사라는 점을 언급하며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등의 경우만 해도 환자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성균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디지털 정보의 정보누출이 취약하다. 접근하지 못할 정보가 없을 정도”라며 “짧은 순간이라도 저장된 정보가 누출될 경우 환자의 정신적 충격과 사회적 파장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한 의료인은 “엄밀히 말해 의사들의 치료행위는 개인의 지적 재산이기도 하다. 수술 장면이 찍힌 영상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의사들의 재산권 침해도 동반된다. 수술행위를 따라한 무면허 의료행위도 늘어날 수 있다”며 “CCTV 설치에 따른 편익보다 손해”라고 강조했다.
CCTV 운용만이 아니다. 법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의 과실을 과거에 비해 높게 판단하고, 처벌 또한 무겁게 내리는 추세다. 국회는 의료사고보고의 기본원칙인 ‘자율성’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정부는 급여기준을 강화해 의사의 재량권을 강하게 통제하려한다.
이 외에도 투명성 확보, 국민과 환자의 알 권리 충족, 공정성·공익성 때론 비용효과성을 강조한 정보공개나 처벌규정 신설, 각종 통제수단의 강화, 행위 등에 대한 제한과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의료계가 움츠러들고 있다.
◇ 법대로, 규정대로‘만’ 하자?… 퍼져가는 진료기피 현상
지난 9월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조합원 97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19명 중 19.6%가 “의료분쟁에 대한 의료인의 책임강화로 중단한 의료행위가 있다”고 답했다.
위험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기피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39.3%는 중대한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분쟁조정절차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일명 ‘신해철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라고 했고, 35.2%는 법원이 대장내시경 검사 후 천공에 의한 사망사건을 두고 의료인의 책임을 100% 인정해서라고 꼽았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만 이틀간 대한의사협회가 진행한 설문에서 진료시간 및 진료 외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요청이 왔을 때 응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631명 중 35.3%(576명)만이 ‘응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길연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의과학교실 교수(대장항문분과장)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이나 의료과실 100% 인정사례 등을 지켜보는 의사들은 ‘나도 구속될 수 있겠구나’, ‘어쩔 수 없이 진료를 할 때면 나도 저 사람처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의사들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라며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일련의 현상이 비단 국내 의사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방어진료로 인해 한해에 6500억달러(739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전체 의료비의 약 30%가 방어진료로 인한 것으로 파악되며, 80%의 의료진은 방어진료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이 교수는 영국 가디언지에 발표된 설문를 인용해 “의사들에 대한 법적처벌이 심해진다면 86%의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강화하겠다고 응답했고, 절반의 의사들은 고위험 환자들을 피하겠다고 답변했다”면서 “고위험환자의 치료가 제한되고, 사망률이 높은 환자에 대한 과도한 또는 미흡한 치료가 이뤄지며, 환자와 의사간 불신이 조장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사도 사람인데 위험한 환자, 위험한 상황을 기피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며 “법적 제재의 강화, 즉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개선시키지 못한다. 모든 개인과 시스템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하고 이는 문화적 법적 개혁 없이는 이룰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이 같은 우려를 변호사들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1일 대한의사협회와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가 ‘의료분쟁의 근간에 해결해야 할 법적·제도적 문제는 없는가?’란 주제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변호사들은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와 경제적 비용효과적 진료를 요구하는 ‘요양급여기준 준수의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인합동법률사무소 전병남 변호사는 “의사들은 ‘사람을 쫒자니 돈이 울고, 돈을 쫒으니 사람이 없는’ 상충되는 가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면서 “요양급여기준 준수의무와 최선의 진료의무 간 모순된 충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고민하고 개선해야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배준익 변호사도 “사람의 생명과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주의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최선의 검사와 진료를 해야 하지만,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할 경우 삭감이나 환수조치, 심하면 면허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면서 과실 책임을 100%까지 묻고, 처벌을 강화하는 규제정책이 도입된다면 회피수단으로 진료를 기피하고 소극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배 변호사는 “판례상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가의 책임을 요구할 수도 있는 문제”라며 ▶요양급여 준수행위에 대한 면책 ▶요양급여기준의 현실화 ▶의사의 재량권과 비용효과적 방법 시행원칙 간의 충돌 해소 ▶책임제한 및 구상권 축소 ▶국가배상책임을 고려한 보상제도 도입 등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방상혁 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의사들을 관리감독하고 처벌하는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신뢰를 확보하고, 의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출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 집단에서 자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