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장점을 접목하려는 시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결과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범사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국민을 위해서라도 협진을 권장하고 활성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2일 국립암센터 등 국공립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제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료기관에서는 암 치료에 침술 등 한의약을 활용하는 양한방 협진을 하고 있는데 왜 국립암센터에서는 하지 않느냐”고 질의했다.
국가 암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에서 세계적인 추세를 외면하고 서양의학에만 의존한 치료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오 의원은 “암환자의 치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 조치가 이뤄져야한다”며 협진을 위한 제도마련을 촉구했다.
세계적인 병원인 존스홉킨스대학이나 MD앤더슨을 예로 들며 이들 병원과 경희대학교병원 등 협진이 원활히 이뤄지는 사례를 잘 파악해 국립암센터가 암치료 분야에서 양한방 협진을 통한 보다 나은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그리고 이는 갑자기 나온 이야기도 아니다. 1998년 국립암센터가 설립될 당시에도 한의진료과를 설치·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를 국정감사 등에서 수차례 지적했다.
2009년에는 운석용 의원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 한의과가 없고, 국립암센터에서 한의사와 생약연구자 등 한의약 전문가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10년에는 주승용 의원과 양승조 의원이 국립암센터의 양한방 협진제도 운영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2014년에는 김명연 의원이 전통의학 연구과와 한의사 채용을 위한 인력배분도 돼 있는데 국회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며 보건복지부를 질타했고, 2016년에는 남인순 의원이 해외 선진국에서 각광받고, 국민의 만족도도 높은 한의약을 공공의료분야에서 적극 수용·발전시켜야 하며 그 방법이 암센터와 일산병원에 한의진료과 설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한방 협진체계 도입 및 확대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당장 의료계가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양한방협진 1차 시범사업 결과로 치료기간이 단축되는 등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하며 확대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의료계는 반발했다.
비슷한 시기 추무진 전 회장의 탄핵논의가 이뤄질 때 양한방협진도 함께 문제시됐고, 이후 대한의사협회 40대 회장선거가 이뤄질 당시 기동훈 후보는 의사 회원들에게 양한방협진 시범사업에 참여할 경우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양한방협진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협회 박종혁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한방과의 협진은 현재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협진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한방은 아직 근거가 부족해 의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협회 입장을 전했다.
실제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도 국정감사에서 오제세 의원의 질의에 “여러 의원들의 꾸중도 있었다. 기관에서 그동안 신경을 많이 못 썼다. 한의약재단과 천연물 관련 약을 개발하고 허가받은 약의 임상시험 등을 같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근거가 중심이 돼야한다. 근거가 만들어지면 확대해나가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양방 협진은 양의계와 한의계의 직역간 이익다툼의 문제가 아닌 국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사안”이라며 “암치료에 있어 한양방 협진이 환자의 치료효과를 높이고 특히 항암치료 중인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미 세계적으로 서양의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의학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의료선진국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문제점 지적에만 머물지 말고 정부가 나서 국립암센터 한의과 설치와 한양방협진체계 구축에 앞장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알려진 바에 따르면 MD앤더슨,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의료기관에서는 양한방 협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암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MD앤더슨 암센터는 홈페이지를 통해 ‘침술은 항암화학요법에 의한 메스꺼움, 구토, 구강건조, 안면홍조 등에 효과적’이라며 침치료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1884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민간 암센터이자 U.S. News & World Report 평가에서 미국 암병원 1위를 차지한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경우도 침술 등 한의학의 효과를 본 환자들의 경우 80% 정도가 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암센터를 찾고, 전체 환자의 80% 가량이 양한방 협진에 만족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비소세포폐암환자에 대한 한·양방 치료병행 시 환자생존율이 증가하고 항암치료에 따른 피부 및 소화기계 부작용이 감소한다(J Integr Med. 2014년)’, ‘진행 간세포암 환자 288례를 분석한 결과 한약투여와 간암환자의 생존기간 사이에 유의한 상관성이 있다(Scientific Reports. 2016년)’ 등 국제학술논문과 연구결과가 협진의 효과와 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