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중심의 만성질환관리제는 이미 실패한 모형", "한의사 배재하는 밀실행정 보건의료 정책"
의사 중심의 만성질환관리추진 사업에 한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는 26일 오전 서울 세종호텔 3층 만성질환관리 추진단 회의장 앞에서 "만성질환관리제도를 만드는데 의협만 데리고 논의할 이유가 있나. 복지부의 의사협회 눈치보기가 도를 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한의협은 추진단회의를 참관할 예정이었으나 전일인 25일 오후 보건복지부로부터 참관불허를 통보를 받았다. 이에 반발한 한의협이 이날 추진단 회의가 열리는 호텔 앞에서 반발 시위를 연 것이다.
김경호 한의협 부회장은 "복지부의 만성질환 사업 추진에 있어 한의협은 10년이 넘게 공식적 참여를 요청해왔다. 국회 질의에서 복지부장관에 의사 뿐아니라 다른 직역도 만성질환에 참여시켜서 성공케하라는 취지의 답변도 받아낸 바 있다"며 "금일 회의 또한 지난 9월 6일 이건세 만성질환추진위원장을 만나 한의협의 참관을 허락받았지만 복지부는 하루 전날 참관조차 불허한다고 통보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복지부는 불허 이유로 의협의 양해를 구하지 못했다며 행정착오라고 설명했지만 똑같다고 본다. 복지부가 진행하는 만성질환주치의제는 한의사, 치과, 간호사, 약사 등 다른 직역은 배재하고 오로지 의협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만성질환관리를 하는데 의협만 데리고 논의할 이유가 있나.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의료독점을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은 동네의원 등 일차의료기관에서 고혈압·당뇨 환자에 대한 진료에 생활습관 교정·상담을 더해 포괄적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사업이다. 동네의원에 상담인력인 케어코디네이터(간호사 또는 영양사)를 고용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수가를 추가로 적용한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 한의협은 의사만을 대상으로 한 '만성질환관리 사업은 실패할 것'으로 예견했다. 앞서 복지부는 4가지 종류의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시행한 바 있지만, 한의협은 이를 실패사례로 평가한다.
박종훈 한의협 보험의사는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궁극적인 이유는 의료인력 부족이다. 아무리 좋은 모형이 나오더라도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해왔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한의사 등 관련직능의 참여다. 의협의 독점주의 때문에 전문인력들이 배재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은경 약무이사는 "정확히는 의원급에서 환자를 길게보지 않는다. 기존에 의원급에서 실패한 이유는 만성질환 환자에 긴 진료시간과 충분한 설명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의사들을 끌고가려니 사업이 안 된다. 반면 한의사는 진료시간 할애와 통합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현재도 초진 20분, 재진 10분 이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등 만성질환 관리에 굉장한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의협에 따르면, OECD 국가의 의사 수 평균은 1000명당 3.3명 수준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1000명당 2.3명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한의사를 제외할 경우 의사수는 1000명당 1.7명으로 떨어진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1000명당 1.7명 수준으로는 만성질환 관리를 할 수 없다. 한의사를 끌어모아야 간신히 할 수 있다"며 "도처에서 의사 독점에 막혀 보건의료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면 잘 훈련받은 2만 5000명의 한의사와 다른 전문인력을 활용하면 국가가 원하는 보건의료 정책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혁용 한의협회장은 "한의협은 정부의 만성질환관리 기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의협은 내부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의협은 앞으로도 정부의 개혁방향에 동참하면서 그 안에서 한의사의 역할을 찾아갈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한의협의 회의 참관 배재는 절차 상의 문제가 있다. 복지부가 사과하고 한의계 뿐 아니라 다학제적 참여를 허용해 제도를 개선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더 잘 추진하기 위해서 정부 내 다른 목소리들과 싸우겠다"고 힘줘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