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3개월만 체류해도 평생 헌혈 금지

영국서 3개월만 체류해도 평생 헌혈 금지

기사승인 2018-10-29 08:00:00

#. 2003년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A(37)씨가 2010년 귀국했다. 이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던 그에게 헌혈할 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수혈을 하는데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친구의 부탁들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헌혈차에 올랐다. 하지만 A씨는 헌혈을 거부당했다. 

영국은 대표적인 광우병 발생지역으로 일정기간 이상 영국에 머물렀다면 평생 헌혈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그는 당혹스러움과 뭔지 모를 상실감, 합리적인 처사인지에 대한 의아함을 함께 느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A씨의 사례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사진)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헌혈배제기준 및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가 혈액수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광범위하게 헌혈배제정책을 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장 광우병(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경우 보건복지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2조에서 감염병으로 분류하고, 혈액관리법 7조2(채혈금지대상자의 관리) 등에 따라 헌혈을 영구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상은 1980~1996년까지 영국에 1개월 이상, 1997년 이후 지금까지는 3개월 이상  거주했거나 방문 혹은 여행을 간 이력이 있는 사람, 1980년 이후 5년 이상 영국을 제외한 유럽국가에서 거주나 방문, 여행을 간 사람, 1980년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수혈을 한 사람이다.

그나마 광우병은 기간이라도 명시돼 있는 경우다. 만성B형간염이나 C형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바베스열원충증, 샤가스병과 같은 혈액 매개 감염병 환자나 의사환자, 병원체보유자는 원천적으로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암환자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질환자, 간경변 등 간질환자, 심장병환자, 당뇨병환자, 류마티즘 등 자가면역질환자, 신부전 등 신장질환자, 혈우병, 적혈구증다증 등 혈액질환자, 한센병환자, 매독환자를 제외한 성병환자, 알콜중독자 또는 경련환자도 헌혈을 못한다.

과거 에트레티네이트 성분의 약물을 투여 받은 적이 있거나, 소에서 유래한 인슐린을 투여 받은 적이 있는 자, 뇌하수체 유래 성장호르몬을 투여 받았거나, 변종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위험지역에서 채혈된 혈액의 혈청으로 제조된 진단시약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한 약물을 투여한 자, 과거 경막 또는 각막을 이식 받은 경험이 있는 자도 헌혈을 할 수 없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감염 위험지역에 체류를 했는지,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고, 약물은 어떤 걸 투약했는지를 개인이 헌혈에 앞서 직접 기술해야한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헌혈자의 성실한 정보제공 의무가 있다지만 개인의 신고로만 이뤄지는 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생명윤리과 관계자는 “관련 정책은 감염병 감염 위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일본의 경우에도 광우병 발생지역 여행자에 대한 헌혈배제정책이 의학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위험관리를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질병들은 감염될 경우 치료가 어렵고, 수혈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금지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vCJD(광우병) 등 감염자 또는 위험요인 노출자의 혈액을 수혈 받아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한 보고는 없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만성질환과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금지정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그마저도 자기보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반면 혈액의 수요증가와 수급부족이 지속되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배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김승희 의원은 “헌혈을 영구적으로 제한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더구나 수혈 감염 문제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자가 체크에만 의존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출입국 정보를 연계하는 등 자기보고를 최소화하고, 원활한 혈액수급과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통합 관리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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