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23년 확정,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 총책 단죄

징역 23년 확정,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 총책 단죄

기사승인 2018-11-02 12:29:09



전국의 농아인(청각장애인)들을 상대로 고수익을 벌 수 있다고 사기행각을 벌여 거액을 받아 가로챈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의 총책 김모(46)씨가 징역 23년형이 확정되면서 단죄를 받았다.

뒤늦게 그 실체가 드러난 ‘행복팀’은 사실 같은 농아인들 상대의 사기행각이 목적인 범죄조직이었다.

김씨는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기단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 총책에게서 범행 수법을 배웠다.

전 총책이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히자 앞서 만들어졌던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고, 그 틈에 김씨가 새로운 투자사기단 ‘행복팀’을 만들었다.

그는 전국 각 시‧도 지역을 담당하는 팀장 등 공모할 인물들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지역팀 이름은 보라‧노랑‧빨강‧주황 등 색깔 이름으로 정했다.

김씨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절대 없었다. 피해자 접근‧권유‧포섭‧회유‧협박 등 일련의 범행 과정은 모두 김씨 휘하의 팀장 등 수하들이 도맡았다.

수하들은 이런 김씨를 나이 90이 가까운 노인으로, ‘그분’ 또는 ‘윗분’ 등으로 피해자들에게 마치 교주 같이 묘사했다.

팀장들은 거의 모든 것을 김씨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

행복팀은 농아인 사회에서 알게 된 피해자(농아인)들에게 접근해 고수익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속였다.

농아인들이 정상인 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폐쇄적인 농아인만의 특성을 노렸다.

이들 역시 농아인들이어서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기에 범행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물론 회유나 권유가 통하지 않을 때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완전히 속은 피해자들은 자신이 일하며 벌어 놓은 돈을 이들에게 갖다 바쳤다.

행복팀은 이마저도 부족해 피해자들의 신용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 등에서 대출까지 받아 돈을 쓸어 담았다.

범행 당시에는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수두룩했다.

자신도 모르는 금융기관에서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자 그때서야 뒤늦게 알게 된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행복팀의 위세는 대단해 수년 동안 은밀히 범행은 계속됐다.

그러다 2016년 11월 중순 드디어 행복팀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에 사는 한 농아인이 수백㎞나 떨어진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를 찾으면서였다.

창원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농아인이 경찰서를 찾아온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이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피해자가 농아인이어서 서로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보니 종이에 글을 써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필담으로 진행됐다.

이 피해자의 사연은 다른 행복팀 피해자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복팀에 속아 자신이 모아뒀던 돈을 모두 투자했는데 수익은커녕 원금도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집 근처 경찰서를 찾아가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또 다른 경찰서를 찾아가서 토로해도 어느 누구도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창원중부경찰서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4시간이 넘도록 필담을 주고받으면서 경찰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의 꼬리가 밟히는 순간이었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애초 경찰이 파악한 피해규모는 농아인 500여 명에 280억원가량이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행복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경찰이 자신들의 목을 조여오자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회유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역시 자신들의 혐의를 벗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이들의 회유에 피해 농아인들은 갈팡질팡했다. 몇몇은 속아 넘어가 합의서를 써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면서 확인된 피해 규모는 실제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 조직의 진짜 실체 ‘그분’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좀처럼 파악되지 않던 행복팀의 수괴는 엉뚱한 상황에서 반전을 맞아 실체가 드러났다.

총책 김씨의 전 연인이었던 행복팀 중간책이 김씨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배신감에 행복팀 전모를 경찰에 폭로했다.

‘그분’이 김씨로 확인되자 이로써 행복팀 사건의 경찰 수사는 모든 퍼즐이 완성됐다.

경찰은 행복팀 총책 김씨와 지역팀장 등 30여 명의 행복팀 조직원 모두를 붙잡아 검찰에 넘겼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을 단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피해 회복이 묘연한 데다 실제 총책 등에게 중형이 선고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경찰서, 검찰청, 법원 앞에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집회를 열어 관심을 호소하며 엄벌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이렇게 우려한 데에는 형법상 농아인은 감경 대상이라는 조항 때문이었다.

장애인이라는 점에 농아인은 처벌을 받아도 일반인에 비해 그 형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때문에 총책 김씨가 재판을 받더라도 실제 형량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피해자들에게서 팽배해 있었다.

이에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행복팀을 ‘범죄단체’로 규정했다.

범죄단체조직죄는 그동안 조폭들에게서만 적용‧인정돼 왔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처음으로 이 죄가 적용‧인정되면서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있었다.

경찰은 행복팀도 총책을 필두로 행동대장격인 지역팀장 등 조직의 모습을 갖췄고, 행동강령 등을 근거로 범죄단체로 판단했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되면 형량이 더 늘어나게 된다.

행복팀과 같은 유사수신업체에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하기는 처음이어서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총책 김씨에게 농아인인 점을 감안해 징역 7년6월을 구형했다.

빚 독촉에 시달린 농아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수백명의 농아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대가치고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구형량에 피해자들은 또다시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그런데 법원이 이례적으로 김씨의 선고를 2번이나 미뤘고, 이 사이 검찰은 김씨의 공소장을 변경했다.

다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총책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애초 사기 혐의에서 특경법상 상습사기 혐의로 공소장이 변경되면서다.

검찰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려고 했으나, 농아인 감경 대상이어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농아인인 피고인이 농아인 사회가 폐쇄적인 특성인 점을 알고 이를 악용, 사기 범죄 단체 조직을 결성해 고수익을 미끼로 같은 농아인들을 상대로 막대한 금원을 편취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도 피고인은 이들의 고통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은 이로 인한 경제적 고통뿐만 아니라 농아인들 역시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렸다. 이는 통상의 사기 사건과는 다른 유형으로, 피고인의 사기 행각은 가히 살인 행위와 맞먹는 것”이라고 엄히 꾸짖었다.

1심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행복팀 단체를 범죄단체라고 판단하고 유사수신 사건에서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도 적용했다.

김씨 일당은 1심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법원에서는 추가 범행이 인정되면서 김씨 형량이 징역 23년으로 더 늘어났다.

이 판결도 수긍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2심과 같은 판결을 내리면서 김씨는 징역 23년이 확정됐다.

농아인 사회에 전대미문으로 기록될 행복팀 사건은 유사수신범죄에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인정된 사례로, 향후 유사범죄에 미칠 파장이 커 의미가 크다.

하지만 행복팀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의 피해 회복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지능범 농아인에 대한 ‘형법상 농아인 감경 조항’ 존폐 논란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행복팀 피해자들을 도와준 박영진씨는 “아직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되지 않아 그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했다.

박씨는 “이번 판결은 처벌 수위가 낮을 것이라고 보고 피해 회복에 손을 놓고 있던 행복팀에게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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