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납니다"…정말 그럴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납니다"…정말 그럴까?

기사승인 2018-11-05 13:02:36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20대 남성이 50대 여성을 무참히 때려 잔혹하게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강력 사건에서도 가해자의 음주측정(혈중알코올농도)을 규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인 박모(20)씨가 “술에 취해 범행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면서 주취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을 염두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면서다.

특히 이 사건은 자신보다 훨씬 왜소한 여성을 별다른 이유 없이 무참히 때린 것도 모자라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 범행의 잔혹성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어 가해자의 이 같은 진술에 신상공개와 심신미약 불인정을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재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음주운전 교통사고나 음주운전 단속이 아닌 경우 강력사건에서 술에 취한 가해자의 음주측정을 해야 하는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거제 살인 사건의 피의자 박씨도 범행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지만 따로 음주측정은 하지 않았다.

경찰은 박씨에게서 술 냄새가 많이 났던 점 등을 토대로 박씨가 술에 취해 범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가 실제 얼만큼 술을 마셨는지는, 주점 현장 조사나 같이 술을 마신 지인 상대 참고인 조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박씨 본인 진술 외에 박씨의 취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박씨가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에서 진술이 엇갈리는 점으로 미뤄 거짓진술을 배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경찰은 박씨가 만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고의성이 없다고 본 반면 검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박씨가 술을 마셨지만 만취 상태가 아니라 사리분별할 정도라고 판단했다.

이에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박씨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살인’ 혐의로 박씨를 기소했다.

범행 당시 박씨의 술에 취한 정도가 이번 사건에서 왜 중요한 쟁점이 되는지에 대한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이날 박씨가 술을 언제 어느 정도 마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때문에 박씨가 정말 만취했는지, 검찰 판단대로 사리분별이 가능했는지는 정황상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강력사건에서도 가해자 음주측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직 한 경찰관은 “베테랑 수사관은 강력사건에서도 음주측정한 경우도 있었다”며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가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채혈 등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초동수사 단계에서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면 검찰 수사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도 만취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거짓‧허위진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거제 살인 사건처럼 경찰과 검찰에서 사건을 보는 관점이나 혐의 등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경우나 가해자가 술을 마신 정도가 중요한 쟁점이 되는 사건에서 경찰 초동수사 단계에서 가해자 음주측정의 도입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은 술 마시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전제조전에 있고 명확한 수치의 기준이 필요하지만, 강력사건에서 음주측정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도 살인 사건이 났는데 음주수치 기준을 가지고 양형에 참고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살인 사건 등에서 음주측정을 통해 수치로 만취 여부를 따지는 것은 재판에 유연성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이번 거제 사건의 가해자는 범행 당시 시민들이 오는 것을 인식하고 가라고 한 점, 본인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던 점, 피해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무참히 때린 점 등을 보면 만취 상태라는 가해자 진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강승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