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부실수사 논란에 이어 인권침해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수사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거제 잔혹 살인 사건’에서는 경찰이 범행 동기나 혐의 적용 등에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하면, 금팔찌 절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해의 한 병원에 근무하던 40대 여성 간호조무사가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이 여성은 병원 현장에서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경찰 추궁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해의 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했었던 박모(49‧여)씨가 김해시내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박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억울하다. 수만 번 결백을 외쳐도 경찰은 판사나 검사 앞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한다. 내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박씨는 지난 8월 병원에서 근무하던 당시 환자 소유 5돈 금팔찌(100만원 상당)를 훔쳐 간 절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었다.
이 병원 초음파실에서 환자가 X-ray 촬영을 위해 바지주머니에 넣어둔 금팔찌가 X-ray 촬영 후 사라진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 초음파실에서는 환자, 박씨, 의사 등 3명이 있었고, 경찰은 금팔찌가 사라진 시점에 이들이 있던 위치나 동선 등을 고려해 박씨를 용의자로 판단했다.
그러나 박씨는 줄곧 “나는 훔치지 않았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박씨 동의를 받아 조사한 거짓말탐지기에서도 박씨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나왔다.
그럼에도 박씨는 절대 금팔찌를 훔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2달 뒤 박씨가 초음파실에 있던 상자 밑에서 사라진 금팔찌를 발견하고는 병원 관계자에게 건네줬다.
현장 조사에서 나선 경찰은 용의자로 지목한 박씨가 피해품을 찾는 경위가 수상해 발견 경위 등을 추궁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병원에 있던 박씨 동료들이 경찰이 박씨를 추궁하는 내용을 들었다.
경찰 수사에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범죄수사규칙,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수사할 때 사건관계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사실확인을 할 때에는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사건관계인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사를 마친 뒤 박씨는 억울함에 울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고, 결국 박씨는 병원을 그만뒀다.
병원을 그만두고 일주일 만에 박씨는 남편과 자녀를 남겨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경찰이 원칙은 무시하고 수사 편의만 생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사무국장은 “경찰이 정해진 원칙은 무시하고 단지 수사 편의만을 생각할 때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범인을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 확보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청문감사관실에서 수사 과정에서 적절했는지 여부 등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50대 여성을 무참히 때려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경찰이 범행 동기나 혐의 적용 등에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조사하지 않았다.
디지털포렌식(데이터 복구 작업)을 통해 검찰은 가해자가 범행 전 휴대전화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으면 목이 어떻게’ 등을 검색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가해자가 범행 후 피해자의 피가 흥건히 묻은 자신의 신발을 찍은 사진도 확보했다.
인터넷 검색어와 피 묻은 신발의 사진은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가해자 진술을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증거다.
경찰에서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됐던 이 사건 가해자는 검찰이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이처럼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미흡한 조처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가 않다.
시민 정모(35)씨는 “수사 과정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수사 결과 또한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해=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