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사이 4번째 의사집회, 요구사항과 전망은?

1년 사이 4번째 의사집회, 요구사항과 전망은?

대한민국 응답하라는 의사들, 등 돌린 여론과 역공나선 한의계

기사승인 2018-11-13 00:00:00

대한민국 의료계가 시끄럽다. 의사들은 2017년 12월 10일 1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4번째 거리집회에 나섰다. 현장에 감도는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기존 집회가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 케어)을 비난하고 개선을 촉구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담겼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 걸까.

◇ “의사, 환자 모두가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하자!”

11일, 서울시청 맞은 편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 모인 1만여 의사들(주최측 추산 1만2000명, 경찰추산 6000명)은 2013년 8세 아동을 오진했던 3명의 의사가 금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사건을 계기로 일주일 중 단 하루의 휴일을 반납하고 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진료의사 부당구속 국민건강 무너진다’, ‘방어적인 진료조장 사법부가 책임져라’, ‘적당진료 강요하는 의료구조 개혁하라’, ‘심평의학 족쇄풀고 최선진료 보장하라’, ‘의료제도 바로세워 국민건강 지켜내자’, ‘의사면허 박탈법안 국민건강 박탈된다’, ‘의과기기 한방사용 국민건강 파탄난다’, ‘의정합의 말뿐인가 지금즉각 이행하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집회 연단에 선 대표자들은 ▶국민건강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불합리한 의료규제 및 제도개혁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마련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저지 ▶의사면허 박탈법안 폐기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인력 적정수급 방안 마련 ▶저수가 구조개선 ▶진료자율권 및 선택권 보장 ▶의료인 폭행방지 및 형사처벌 제외 등이다.

동네의사를 대표하는 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은 “수술할 의사, 분만할 의사, 응급실·중환자실에 근무할 의사 등 환자를 위해 필요한 필수 인력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이젠 남은 의사들마저)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모조건 방어진료를 해야 하고, 진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신 없이 과도한 검사에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슬픔에 빠져 있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100명이 넘는 환자를 1명의 전공의가 담당하고 있다. 밀려오는 중환자와 응급환자로 인해 전공의들은 밤을 지새운다”면서 “전공의들이 안전하게 수련받고 환자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 안전한 의료환경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정의학회 등 일부에서는 ▶주치의제 도입 ▶면허갱신제 및 면허관리 강화 ▶환자정보 공유 활성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도개선도 요구했다. 주치의가 없어 환자의 병력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성남에서의 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환자의 질환 등에 대한 진단을 오롯이 주치의가 내려야한다는 점에서 의사의 지식과 역량을 꾸준히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요구를 포함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의사와 환자 모두가 안전한 의료환경 구축을 위해 의료과실 등에 대한 처벌강화법안을 폐기하고, 무과실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등을 위한 특례법 제정을 주장했다. 폭행, 협박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일련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원가에 미치지 않는 낮은 수가의 정상화와 전달체계로 명명되는 의료서비스 이용형태를 기능중심으로의 확립, 중환자실 및 응급실 인력확충과 산부인과·흉부외과 등 필수적이지만 외면 받는 외과계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재정적 지원확대, 국민건강을 위협할 무자격자 의료행위 및 의료기기사용 문제해결, 잘못된 의약분업 재평가 등도 촉구했다.

최 회장은 “의사들은 그동안 매우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국민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 하나로 온갖 희생을 묵묵히 감수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 최선의 진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한다”면서 전국의사 총파업(집단휴진)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 의사집단, 전국단위 총파업 의결했지만… 불투명한 미래

하지만 의료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오진에 의한 8세 환아 사망사건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다.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사건 등으로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사건을 시작으로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가 만연하다는 사실들이 알려지며 등을 돌렸다.

더구나 고급 외제차를 타며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의사들의 요구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에겐 와 닿지 않는 외침이며, 형사처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의료기관 및 의료인들의 자정노력은 없이 권리만을 요구하는 행위라며 의사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여론만이 아니다. 같은 보건의료계 일원인 한의사들의 대표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는 기타 보건의약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의사 중심 보건의료체계의 재편을 주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의 거리집회가 있었던 다음날인 12일 성명을 통해 “양의계의 의료독점,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휘둘려야하냐”면서 힘을 모아 깨뜨려야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의협은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혈안이 된 양의계의 비윤리적이고 몰상식한 행태”라고 규명하고 의료계의 의료독점 철폐와 국민의 건강권 수호를 위해 대한치과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단체와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총력투쟁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의사들이 전가의 보도인양 ‘총파업’을 꺼내들고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한다는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모습은 대리수술과 각종 리베이트, 의료기관 내 성희롱과 향정신성의약품 불법사용 등 범법행위에 관대하고, 수술실 CCTV 설치 등에는 강하게 반발하는 이중적 모습과 더해져 국민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자 이를 개선하자는 요구다.

이와 관련 한의협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료인 단체로서 이 같은 과오에 대한 양의계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책 발표를 촉구해왔지만 오히려 한의계를 악의적으로 폄훼하며 의료독점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이제는 양의계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경종을 울려야한다”고 설파했다.

한편, 보건의료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또한 의료계의 거리집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문재인 케어와 그에 동반하는 여러 보건의료제도의 개선이 추진 중이며 환자를 위한 안전한 환경을 위해 의료계를 비롯해 각계의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의 궐기대회 등 강경대응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는 보건의료정책을 추진하는 하나의 대화상대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의정협의 등 의료계와의 논의에도 큰 변화는 없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복지부는 언제나 환자와 국민을 중심에 두고 판단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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