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아버지의 유산

[친절한 쿡기자]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

기사승인 2018-11-14 05:00:00

“시험은 그저 형식에 불과해. 졸업시험에선 누구나 커닝을 한다고. 시험을 어떻게 봤든 결과는 마찬가지야. 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 쓸모없어. 중요한 건 더 나은 세상에 진출하는 거지. 때로는 결과만이 중요해. 우리가 결정한 거니까 애는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 

지난해 개봉한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작품 ‘엘리자의 내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루마니아 의사인 ‘로메오’는 그의 딸 ‘엘리자’를 영국으로 유학 보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겁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딸이 시험을 망치자, 졸업시험 점수 조작에 나선 겁니다. 그러나 로메오와 달리 그의 아내 ‘마그다’와 엘리자는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로메오는 딸에게 말합니다. “엘리자, 때로 인생에선 결과가 더 중요하단다. 너에게 늘 정직하라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아. 너에게 최선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영화의 한 장면을 보니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 유출 사건으로 시끄러운 숙명여자고등학교 이야기입니다.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문제와 정답을 유출하고, 이를 받아 쌍둥이 자매가 부정 시험을 본 믿지 못할 일입니다. 아버지는 구속되고, 쌍둥이 자매도 퇴학을 앞둔 상황에서 이들에게 과정과 정직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영화 속 로메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과거 루마니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로메오는 실패한 혁명과 국가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린 채 살아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자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습니다. 루마니아 밖으로 나가 희망을 보길 원했죠. 어떤 부모인들 다를까요. 로메오의 소망은 그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방법에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로메오 그리고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도 말이죠. 결국 두 아버지가 딸들에게 준 것은 경쟁 사회의 비극, 부조리와의 타협,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 윤리의 타락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사회는 로메오의 대사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높은 비율로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시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상은 그리 정직하지도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부당함 속에서 원칙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부정을 통해 본 세상은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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