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주지 않고 진료하면 당장 환자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항생제 처방’에 대한 한 의료진의 고충이다. 진료실에서 항생제 처방을 줄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감기 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항생제 없이 보려면 진료시간이 40%가량 더 든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현존하는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할 것으로 전망한다. 슈퍼박테리아 시대가 오면 세계대전 수준의 재난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온다.
슈퍼박테리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쉬운 일은 현존하는 항생제의 사용연한을 최대한 늘이는 것이다. 새 항생제 개발은 국가와 연구자들의 몫이지만,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OECD국가 중 세 번째로 항생제를 많이 쓰는 우리나라는 특히 감기 등 가벼운 질환에도 항생제를 오남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공유하는 ‘빨리빨리 문화’에는 감기도 예외가 아니다. 기침, 콧물 등 감기 증상이 보이면 병원을 찾아 항생제 성분의 주사나 약을 처방받고, 다음날 바로 낫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기에 항생제를 쓰면 하루 이틀 정도 빨리 낫는 편이라고 한다.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빨리 안 낫는다’며 환자 만족도가 떨어지고, 동네마다 ‘감기 잘 보는 의원’엔 입소문이 나기 마련이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진료실에서는 감기 증상엔 무조건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 진료시간도 절약하고, 환자 만족도도 높이는 안전한 방법이 됐다. 항생제가 기본 처방으로 굳어지니 항생제 오남용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으로 감기는 빨리 나을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더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항생제 내성균이 생기면 정작 큰 병에 걸렸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가짓수가 줄어들어 더 위험하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장내미생물총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등 항생제 사용 자체에 대한 폐해도 적지 않다.
때문에 우리 사회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가벼운 질환에는 되도록 항생제를 처방받지 않되,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생각보다 하루 이틀 더 앓더라도 이해하고 병원을 한 번 더 찾는 수용적인 태도도 필요하다. 쌀쌀한 바람과 함께 기침, 콧물이 흔한 계절이 왔다. 감기에는 속도보다 여유가 명약일 수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