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통한 무상의료 실현을 목표로 결성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본부)’의 총구가 정권교체를 함께 일궈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했다. 노선이 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계기가 된 사건은 지난 12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무상의료본부는 이를 원격의료 시행방침까지 공식화한 발언이며 이미 당·정·청 간 협의가 끝난 것으로 판단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무상의료본부 관계자들은 20일 민주당 당사 앞에서 “원격의료는 대기업 배불리고 환자안전 위협한다”며 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손에는 ‘생명, 안전 위협하는 의료기기, 의약품 규제완화 즉각 중단하라’, ‘원격의료, 영리자회사, 헬스커넥트 OUT’, ‘빚더미 헬스커넥트 재투자, 원격의료가 돈줄?’, ‘돈벌이 원격의료 말고 공공의료 확충’ 등의 문구가 담긴 팻말들이 들렸다.
◇ 원격의료, 의료민영화로 가는 마중물?
무상의료본부가 우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보건의료를 혁신성장을 위해 가장 파급력 있는 융합영역이라고 포장하며 산업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발판으로 보건의료를 수단화하고 있다고 봤다.
보건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공공적 통제가 이뤄지고, 공적기반을 바탕으로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쳐 안전하고 유효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허용돼야함에도 불구하고, ‘첨단’ 혹은 ‘혁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생명을 볼모로 산업을 육성하고 수익을 창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이뤄지는 원격의료의 경우 정확한 환자의 질환이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존에는 환자가 홀로 사용할 수 없었던 체외진단기기가 폭넓게 허용되고, 이 과정에서 의료기술평가를 통한 안전성이나 유효성 검증 없이 임상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정부가 이미 원격의료를 위해 사용될 각종 체외진단기기 등에서 추출된 질병 및 신체 정보나 의료기관 등에서 수집된 의료 빅데이터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 또한 세우고 있는 만큼 지난 정권의 의료민영화 적폐정책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점도 걱정했다.
무상의료본부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입법 추진은 의료 취약계층 등 예외적 적용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며 “민간기업의 예방 및 건강관리서비스 등 원격의료 확산에 포석을 둔 의도된 입법 추진”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홍영표 원내대표가 기자간담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면 관련 업종의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듯, 산업적 활용과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며 “의료취약지나 사각지대를 위한 법적 기반마련이 목적이 아니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입법 추진논의를 즉각 중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무상의료본부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상정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향해서도 경고했다. ‘첨단’으로 분류한 의료기기와 의약품의 대부분이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출현단계’이기에 이를 허용해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임상시험이 자행될 수 있는 법안들을 당장 폐기하라는 요구다.
대표적으로 첨단·혁신 의료기기산업 육성에 관한 법안과 첨단 재생·바이오 의약품 규제완화 관련 법안들이다. 선진입-후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허가방식이 핵심인 일련의 법안들이 도입될 경우 식약처장의 임의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지 못한 연구단계의 의료기기나 의약품, 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임상시험계획승인(IND)절차마저 무력화되고, 유효성에 대한 평가 없이 임상1상 정도의 안전성 검토만으로 환자에게 사용되며, ‘조건부 심사’ 등으로 허용돼 검증 없이 시장 출시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더했다.
이에 무상의료본부는 “기본적인 상식과 식견을 갖춘 위원회라면 관련 법안을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더욱이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수렴 등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는 것은 문제다. 밀어붙이기식 의료민영화 입법 추진을 중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