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가 충족되지 않아 기적을 바래야하는 취약지에서 기적이 일상이 되길 기대합니다."
남원시를 비롯한 지방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전담하는 의사를 배출해야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적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4년제 공공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2019년도 예산안 논의가 이뤄지며 급물살을 타고 있는 공공의학전문대학원(이하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며 26일 ‘바람직한 공공의료 활성화’를 주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석훈 한국의대의전원협회 전문위원(강원대병원 교수)과 서경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공공의대의 설립은 민간이 94%가량을 차지하는 국내 의료환경 하의 공공의료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을 거듭 강조했다.
강 위원은 뇌출혈, 심근경색 등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된 필수의료가 부족하고, 어린아이와 산모가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현실은 의료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각종 땜질처방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역할과 실태를 제대로 점검하고 재평가하지 못했으며 각종 국립대병원과 국공립의료원이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과 지원이 부족했으며, 도처에 위치한 민간의료기관을 외면한 결과이자, 의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조성해주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지배적이라는 문제제기다.
여기에 서 연구원은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할 경우 공공의사의 배출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의료인력 자체가 이원화돼 융합하지 못하고 반목하며 충돌해 원활한 연계나 교류·협력이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 종국에는 국민건강과 생명을 오히려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성급한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앞서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강화하고 체계적이고 원활한 연계가 가능하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공동체를 구축하고, 의사들이 지역사회와 공공의료,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갖출 수 있는 교육과정을 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건강한 상태로 정년퇴직한 교수들이나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의료취약지의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고 이들을 비롯해 사명감을 갖고 지역사회 특히 의료취약지를 찾는 의사들이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공공의대 설립으로 49명의 의사를 10여년 후 배출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합리적이라고 설파했다.
◇ “지금도 지방은 1명의 공공의료 전담의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대 설립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토론에 참여한 정준섭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의료계가 문제 삼는 사안을 4가지로 정리하고 각각의 정부입장을 밝혔다.
먼저, 공공의대 설립은 성급하고 지엽적인 해법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기존 의과대학을 통해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제공할 의사를 확충할 수 있다면 적극 찬성이다. 가장 좋은 방향”이라면서도 “지역 국립대조차 지역의료원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이어 공공의대 설립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49명의 정원으로는 공공의료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모두 채울 수 없다는 2가지 지적에 대해서도 “초기 건립비용과 의대교수 운영비 예산정도가 투입될 것이며 의대교수 운영비 또한 병원과 대학이 같이 부담하는 구조가 될 것인 만큼 천문학적 예산이 낭비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못 박았다.
게다가 공공의대 설립의 근간이 되는 법안에서 언급된 10년의 의무복무기간과 의무 불이행 시 면허취소 후 10년간 의사자격 재교부 불가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도 “공공의대와 유사한 일본의 자치의대의 의무복무기간은 9년이며, 국내 사관생도의 군복무 의무기간이 10년, 군조종사의 의무복무기간이 15년인 점 등을 볼 때 과도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의무불이행에 따른 패널티 또한 법률에 근거를 둔다면 추진하는데 위헌적 요소가 없어질 것이며, 의무 불이행 시 면허취소와 10년의 자격 재교부 제한 요건이 불합리하다면 법률안 논의과정에서 합리적인 안으로 조정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의료계에 전했다.
덧붙여 공공의대 출신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소요되는 10여년의 시간적 공백에 대안도 내놨다. 토론 후 만난 정 과장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설립이 이뤄져야 하루라도 빨리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배출될 수 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공백기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다만 공백을 없애기 위해 90년대 폐지한 ‘공중보건장학제도’를 부활할 계획이다. 실제 복지부는 이미 20억원의 예산도 편성해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장학금을 받은 기간만 의무적으로 지역에서 복무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방침을 세운 상황이다.
여기에 국립대병원 평가에도 교육부와 공동으로 참여해 지역 의료원으로 의료인력을 파견하는 등 지역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활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부족한 인력은 배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정 과장은 “의사들의 선의에 기대 사명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지역에서 종사하는 것을 바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도 검증된 사실”이라며 “개원한 의원들의 의사가 아니라 공공의료 의사가 있어야 지역 1차 의료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설립은 불가피하다”는 뜻을 다시금 강조했다.
아울러 “3개의 방향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에 의료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한 계획”이라며 “공중보건의 제도, 지방의료원의 인건비가 서울의 2배여도 의료인력이 수급되지 않는 문제도 있어 처우도 계속 높여가고, 공공의료에 뜻을 두고 공부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여건도 갖추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의대가 들어설 예정지인 남원시 인근 주민들도 정부의 강한 의지에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다. 더불어 응급환자나 중증환자가 발생해도 손 쓸 의사가 없고, 대도시로 이송 중 사망하는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단 1명의 의료 인력이라도 지역을 위해 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