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의료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피해자나 유족들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소송비용을 청구 당했을 때 그 액수에 큰 충격을 받는다. 사망사건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천만 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소송비용 중 상당액이 상대방의 변호사 보수다.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도 상담한 변호사의 승소 가능성 말만 믿고 빚을 내어 5백만원~1000만원의 소송비용을 지불하고 민사소송을 시작한다. 추가로 의료감정비용·신체감정비용 등으로 수백만 원을 지불한다.
그런데 5~6년 걸려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판결을 받았을 때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기에 상대방으로부터 지금까지 지불했던 소송비용보다 더 큰 액수의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비용을 청구 받았을 때의 그 좌절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법 제109조와 제98조에 따라 소송비용에 변호사 보수를 포함시키고, 원칙적으로 패소자가 부담한다. 우리나라가 1999년 미국이나 일본처럼 변호사 보수를 각자부담원칙이 아닌 패소자부담원칙으로 변경한 이유는 부당한 소송을 당해 피해를 입은 승소자의 피해를 보상하고 불필요한 남소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고도의 전문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학적 비전문가인 피해자나 유족들이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료소송은 상대방에게 의료과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증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서 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료사고 배전백패,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의료소송에 늘 따라 붙는 이유도 이미 의사에게 기울대로 기운 상태로 의료소송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패소 시 수천만원 하는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떠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의료소송에 선뜻 나서겠는가! 의료소송은 소송을 제기할 때도, 패소할 때도 유전무죄(有錢無罪)이고, 무전유죄(無錢有罪)이다.
예전에는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경우에도 의료기관이 입증 능력이나 경제적 능력에서 유리하고, 피해자나 유족들의 슬픔·상처 등을 고려해 대부분 소송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의료사고 민사소송에 있어서도 의료기관에서 승소한 경우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의료소송 제기 시 입증의 어려움 못지않게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의 소송 의욕을 꺾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현행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원칙을 유지하면서 변호사 보수에 한해 공익소송이나 의료소송, 환경소송 등 입증의 부담이 큰 전문소송 등에서는 각자부담원칙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 부모, 배우자 등을 의료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낸 유족이나 피해자들이 의료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변호사 보수뿐 만 아니라 패소 시 부담할 상대방 변호사 보수 지불 부담 때문에 의료소송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소송 영역에서 소송비용 중 변호사 보수에 대해서는 각자부담원칙을 적용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