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의료감정, 정확할 수 없다?

디지털시대 의료감정, 정확할 수 없다?

의사들, 신뢰·공정·객관성 확보위해 의료감정 체계개편 요구

기사승인 2018-12-24 04:00:00

지금은 모든 것이 전자화 될 수 있는 시대다. 의료라고 다르지 않다.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이 도입된 후 진료 및 처치이력, 각종 검사와 영상자료들이 저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의료감정이 과거 손으로 작성했던 수기(手記)시절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의사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EMR에 기초한 의료감정이 객관적 사실의 검토가 아닌 감정의사의 유추에 의한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짧은 진료시간 내 모든 내용을 글로만 작성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림 등보다 담고 있는 내용이 적어 통상적인 사항들만 간략히 서술돼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건강보험 급여기준에서 요구하는 내용이나, 편의상 상용문구나 통상적인 진료내용을 이미 작성해 복사 후 붙여넣기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응급상황 등의 경우 사후 기록 혹은 기록 누락도 빈번하게 이뤄져 의무기록 외 검사자료나 상황변화 등을 함께 검토하며 ‘이런 상황이 발생했고, 이런 처치가 이뤄졌다’는 식으로 끼워 맞춰야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감정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은 특이상황에서의 의료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다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임상경험을 쌓은 교수들에 의해 사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일부에서 시설과 장비, 전문인력 부족 등 의원 혹은 병원에서의 제한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거나 최선의 진료가 간혹 부족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는 관측도 이어졌다.

이 가운데 의료감정을 의뢰하는 건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 접수된 의료분쟁 수탁감정 처리현황에 따르면 70건이던 2013년부터 해마다 처리 건수가 크게 늘어 2017년에는 580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대한의사협회 의료사안감정심의위원회로 접수된 감정의뢰 건수는 2013년 1232건에서 해마다 늘어 2017년 2510건이나 됐다.

이처럼 의료감정의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해마다 늘고 있는 의료감정 의뢰를 감당할 수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최근 부정적 의료감정으로 인해 진단실수로 환자를 사망케한 의사가 손해배상에 이어 형사소송에 휘말리게 됐기 때문인지, 그간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의료감정제도의 개선을 의사들이 먼저 나서서 요구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21일 오후 ‘바람직한 의료감정 기구설립’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의료감정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방안으로 가칭 ‘의료감정원’을 대한의사협회 산하 독립기관으로 설립할 계획과 그 당위성을 설파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의료감정의 결과에 따라 재판결과가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국민과 의사에게 신뢰받는 공정, 투명한 의료감정, 효율적·체계적 시스템에 의한 신속·정확한 의료감정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독립적 운영체계를 보장받아 객관적이고 공정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의료감정원이 만들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정성균 의협기획이사는 “의료감정은 사회적 안전장치의 기능을 해야한다”며 ▲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 훼손 ▲‘제 식구 감싸기’라는 편견과 오해 ▲긴 회신기간과 감정위원의 자격관리 ▲비용에 대한 재정 및 지원부족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감정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와 관련 한 시민사회 활동가는 “의료소송이나 분쟁이 늘어난다는 건 점점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를 믿지 않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일부는 의사가 작성한 두루뭉술히 한 감정결과와 내용에 불만을 품고 감정을 받으러 돌아다니기까지 한다”며 “독립된 기구일지라도 의사협회 소속이면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정부에서 감정원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신뢰나 공정성 측면에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회에 참여한 의사와 법조계 관계자들은 의료감정원 설립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았다. 다만, 감정원이 의사나 협회의 이익에 반하는 판단도 할 수 있도록 독립적 기구로 설립될 필요가 있다는 점과, 감정위원의 참여 동기를 부여하고 피해를 받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한다는 점만을 강조했을 뿐이다.

오히려 형사소송 상 감정의 증거효력 등을 위해 실명을 밝혀야한다는 입장과 공정한 감정을 위해 익명성을 보장해야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또한, 의료감정이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진료가 제한되고 의무기록이 정확하게 입력될 수 있는 제도 혹은 정책이 함께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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