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땅으로 변한 응급실, 입원대기만 3일

혼돈의 땅으로 변한 응급실, 입원대기만 3일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려드는 환자들… 과밀화 막을 대책이 없다?

기사승인 2018-12-25 01:00:00

응급실이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는 지적들이 나온 지도 수년여가 지났다. 정부는 응급실 특히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과밀화’ 문제 해결을 위해 각종 제도와 정책을 내놓고 국민의 행동변화를 유도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나 각종 환자 편의적 정책으로 인해 환자들의 쏠림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 부산의 한 대학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상황은 단순히 심각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24일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총체적 난국이자 혼돈의 극치를 보였다. 응급실 입구복도에만 18개 간이병상이 펼쳐져있고, 25명이 진료를 받았거나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만 6명이었고, 이들이 평균 대기시간은 3일이었다. 

심지어 63세 여성환자는 72시간을, 85세 고령환자는 69시간을 불도 꺼지지 않는 시끄러운 응급실에서 이제나 저제나 병실로 옮겨지길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입원대기시간이 이틀을 넘다보니 몰려드는 환자에 응급실 병상은 점점 부족해지고, 보호자들의 응급실 출입과 상주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했다.

지난 22일에는 4인 가족 모두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며 역시 독감이 의심되는 자녀의 입원을 요구하며 응급실을 찾았고, 병상 간 이격거리 관련 규정개정에도 미처 병상 간 칸막이 혹은 감염차단벽 역할을 하는 커튼은 옮겨달지 못해 이들이 내뱉는 기침은 사방으로 퍼졌다.

응급실 입원 전 단계에서 분류돼야할 경증환자와 중증환자는 구분 없이 감기환자부터 독감, 단순 두통, 알레르기, 구토 환자에 빠른 입원이나 진료를 위해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들까지 한데 뒤섞여 침대를 차지하고 접수순서대로 진료를 받고 있었다. 말기 암 환자의 갑작스런 증상호소에도 의료진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할 만큼 붐볐다.

응급실에 환자가 몰리다보니 입원이든 퇴원이든 환자가 자리를 비우면 의료진은 별도의 소독은커녕 청소조차 없이 침대보와 베개보만 갈고 다음 환자를 자리에 눕혔고, 처치실 옆에 위치한 세탁물보관실은 환자들이 입고 누웠던 환의와 침대보 등으로 넘쳐흘렀다. 

문제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특히 ‘빅5’로 불리는 병원들의 응급실은 이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점이다. 한 빅5 병원 소속 응급의학과 교수는 “입원대기 3일이면 빅5에선 양호한 편”이라며 “중증환자가 많은, 그 중에서도 병상가동률이 높은 많은 수의 상급종합병원이 이와 유사하거나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상급종병 응급의학과 교수 또한 같은 말을 했다. 최근 2, 3인실 상급병실료 건강보험 적용, 선택진료비 폐지, 각종 비급여 진료의 급여화가 이뤄지며 환자들의 상급종병 쏠림이 심화됐고, 병실이 부족해져 응급환자조차 응급실에서 대기해야하는 악순환이 촉발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환자 자율에 맡겨진 의료기관 선택권과 이를 제한하지 못해 발생한 의료서비스 이용체계(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잘린 고통보다 자신의 손톱 밑 가시를 더 아파하는 환자들의 이기심을 꼽았다.

이 교수는 “환자에게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져있다. 주치의 제도 또한 문제는 있지만 환자의 병을 가장 잘 아는 의사나 제도적 장치가 응급실이나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적어도 과거 1339(응급의료정보센터) 제도만이라도 부활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할 ‘응급의료 기본계획’의 초안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를 수행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도 환자가 제때 적절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기능중심으로 응급의료전달체계, 나아가 의료전달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결국 응급환자가 적정시간 내에 치료를 받고 병실로 이동할 수 있도록 병원 내 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돼 환자 순환이 원만해져야 해결될 수 있는 만큼 경증환자의 입원비중을 줄이고 지역 내 의료기관으로 분산 재배치가 이뤄질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이 같은 주장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응급의료 기본계획에서 일부 경증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리지만 별다른 진입장벽이 없는 현실을 개선하고,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오랜 시간 체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응급실의 혼잡도를 낮추는 방향과 응급실 체류시간을 줄이는 2가지 큰 줄기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응급실 과밀화 지수를 낮추기 위해 병원들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병원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측면도 있다. 환자 자체를 막을 수 없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환자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방안과 함께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는 단계에서 중증도를 판단해 분류하고,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배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한참 고민하고 있다”며 “응급의료 기본계획에는 이러한 정책방향에 대한 고민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구체적이진 않다. 향후 5년간의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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