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갖게 된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좋은 것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람으로 커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그간 세월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이야 늘 쉽게 말로 풀어질 수 있지만, 두 눈과 손, 표정에 담긴 삶의 역사는 묵직하다.
잡초부터 양파 껍질까지 천연염색을 위한 재료를 연구하고 발견해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조봉자천연염색연구소 조봉자 대표의 바람을 따라가 본다.
천연 재료, 생을 불어넣다
무엇이건 배우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조봉자 대표의 젊은 날도 그러했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의상실 일을 하다 상주 시내에 작은 의상실을 운영했다.
그저 바느질과 옷감이 조봉자 대표의 성향에 잘 맞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 분야에 있어서 이상하리만큼 궁금증과 호기심이 왕성했다. 천직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 하나 없이 일은 그렇게 진행됐다.
오가는 교통편이 지금보다 열악한 시절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노력은 지역의 경계를 넘게 했다.
“서울 농업진흥청의 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교수들과 장인들의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해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누군가는 옳게, 또 누군가는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가르쳤어요. 그걸 현실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죠.”
어렵고 난해한 이론을 힘겹게 배웠어도 옳은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조봉자 대표는 일찍이 깨달았다. 모든 것을 실제로 해보았기 때문이다.
직접 해보는 시간이 쌓일수록 옳다고 여겨지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나아가 이런 좋은 천연염색을 쉽게 배울 수 있는 학습법까지 고민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조 대표처럼 천연염색을 곁에 두고 건강을 챙기고 마음을 키우길 바라게 된 것이다.
천연염색, 누구에게나 일상생활이 되도록
조 대표는 천연염색을 하면서 A4용지 몇 장은 거뜬히 채우는 수상 경력과 10여 종류에 가까운 자격증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보다 쉬운 방법으로 귀한 천연의 색을 지닐 수 있을지를 연구해 나가면서,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으면 여지없이 상이 주어졌다.
스스로 깨닫게 된 방법을 널리 알리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필요 자격증도 갖추게 됐다.
그 결과 천연염색을 비롯해 다도와 효소, 천연화장품, 비누 등 천연 재료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하고 만든다.
상도 자격증도 거저 얻는 법은 없다. 목적에 대한 열정은 물론 자신의 체력과 주변의 조력이 필요하다.
천연염색은 천연의 재료를 이용하는 염색법을 통틀어 말한다.
자연히 자연을 곁에 두는 작업이다. 조 대표는 천연 재료를 만지기 시작하면서 약하기만 했던 체력이 스스로 강인해지는 시기를 경험했다.
천연염색이 왜 중요하고, 왜 일상에서 활용해야 하는지 대내외로 알리는 홍보 대사를 자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거기에 조 대표 곁에 가장 든든한 조력자인 부군 이희원 대표가 있다.
염색에 빠져 이곳저곳의 배움을 자처한 조 대표에게 부군은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줬다.
“남편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삶을 온전히 지키지 못 했을 거예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조 대표의 말은 늘 남편에 대한 고마움으로 끝났다.
이희원 대표 역시 천연염색에 열정적이다.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 연구하고 여러 공간에서 강의를 하며 사람들의 의견과 시대 흐름을 작업에 접목시킨다.
대표 내외는 둘의 열정과 노력을 합해, 천연염색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천연, 그 공존에 관하여
천연염색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천연 재료를 직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연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농부 아닌 농부로서의 삶도 살아야 한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가지를 쳐내고 돌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잘 키운 식물에서 염색 재료를 채취하는 시기도 자연이 정해준다.
조금만 서둘거나 늦장을 부리면 자연은 자연의 시간에 맞춰 수확을 허락하지 않거나 지나가 버린다.
자연의 색을 얻는 것은 1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아니, 몇 년 시간으로 정할 수 없는 조 대표 내외의 삶이 고스란히 자연의 시간이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면 자연은 오묘한 색으로 보답한다. 이 역시 자연과 같은 시간을 직접 살아온 작가의 경험에 따른 결과다.
6월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쪽은 9월이 지나면 제 색을 볼 수 없다.
때맞춰 취한 감잎에서 나오는 색은 90가지가 넘는다. 오묘함이다. 형용할 수 없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자연의 오묘함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자연히 우리 곁으로 온다. 그리고 함께 머문다.
“내가 만든 색이 가장 예쁘다고 뽐낼 필요도 없죠. 모두가 자연이잖아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 속에서 자연을 곁에 두길 바라는 거죠. 누군가는 그 어려운 작업을 그리 쉽게 가르친다고 나무라기도 해요. 그래도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하지 않나요?”
자연과의 공존으로 채워진 선생 내외의 삶이 더없이 오묘한 색으로 반짝, 빛난다.
상주=최태욱 기자 tasigi7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