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열일곱 번째 이야기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열일곱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1-23 20:30:00

미켈란젤로광장에서 내려와 아르노 강변에서 버스를 내렸다. 강물을 거칠어 보이지 않았지만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보에서는 강물이 기세 좋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M.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에 나오는 아르노 강은 “그날 아침 강물은 기세며 소리며 색깔이 모두 사자를 방불케 했다”라고 서술돼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쌓였던 알프스의 눈이 녹아 아르노 강으로 흘러드는데, 마치 한여름 폭우가 쏟아진 뒤의 강물처럼 거세게 흘렀을 것이다. 마침 한 대의 카누가 강물을 가르고 있었다. 어쩌면 겨우내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던 카누광일 수도 있겠다. 아직은 강바람이 차지만 초봄을 맞아 몸을 풀기 위해 카누를 띄운 듯하다. 강 건너에 서있는 탑은 수비를 목적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구시가로 향하면서 보니 교통섬 안에 탑이 하나 서 있다. 민트탑(Torre della zecca)이다. 민트탑은 피렌체 성벽의 동쪽 끝에 있던 것으로 근처에 동전을 만드는 주조소가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다. 주조소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노토미아탑(torre della notomia) 혹은 관측탑(torre dell'osservazione)이라고 불렀다. 

아르노 강둑에 있어야 할 이 탑은 1317년에 설계된 폰테 레알레(ponte Reale)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세웠다. 민트탑 꼭대기에는 커다란 테라스가 있어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지하에는 건너편으로 통하는 좁은 하수도가 있다. 민트탑의 벽에는 단테의 ‘신곡’ 연옥편의 한 대목이 적혀있다. “토스카나를 가로지르는 작은 물줄기가 팔테로나에서 시작해 그 흐름이 십육 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 아르노 강의 시원에서 피렌체까지의 거리일 것이다. 

폰테 레알레(ponte Reale)는 교황을 지지하는 무리를 이르는 구엘프(Guelph)의 영수였던 나폴리왕 앙주의 로베르토(Roberto d'Angiò)에게 헌정하기 위해 짓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1837년에서야 완공됐고, 그때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로레인(Lorraine)을 기리기 위해 산 페르디난도 다리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파괴된 것을 1949년에 하나의 아치만 재건했고, 지금은 폰테 산 니콜로(Ponte San Niccolò)라고 부른다. 

민트탑을 지나서 넓지 않은 골목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산타 크로체 대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거룩한 십자가의 대성당)을 만난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시인 포스콜로(Foscolo), 철학자 젠틸레(Gentile), 작곡가 로시니(Rossini) 등 이탈리아의 저명인사들의 묘가 자리하기도 해 이탈리아 영광의 사원(Tempio dell'Itale Glorie)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타 크로체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프란체스코수도회 교회다. 지금의 건물은 1294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성 프란체스코가 설립했던 교회 자리에 짓기 시작했고, 1442년 교황 에우게니우스4세에 의해 봉헌됐다. 건축비는 피렌체의 부자 몇 사람이 내놓았다. 본당은 115m의 회랑과 팔각기둥으로 나뉜 2개의 통로로 된 이집트양식 혹은 프란체스코성인의 상징인 타우 십자가를 나타낸다.

대성당에서 제일 주목할 것은 16개의 예배당인데, 대부분 조토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돼있고, 많은 무덤과 기념비가 들어있다. 대성당의 회랑(Primo Chiostro)에는 1470년대에 완성된 챕터 하우스 형식의 파찌 예배당(Cappella dei Pazzi)가 있다. 두오모의 돔을 설계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도 설계에 참여했다. 

훌륭한 건물도 마음 상태에 따라서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망 좋은 방’에서 읽을 수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 구경에 나선 루시는 동행했던 레비시양이 성당 앞에서 만난 피렌체 친구를 따라가는 바람에 홀로되고 말았다. 마음이 상한 루시는 의기소침해지고 배신감에 싸여 홀로 산타 크로체 성당에 들어갔다. “물론 교회는 훌륭한 건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창고 같은지! 게다가 이 싸늘한 냉기!”라고 느낀 것은 아마도 불편한 심리상태에서 주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탓은 아닐까 싶다.

산타 크로체 대성당 앞에는 산타 크로체 광장이 있다. 광장은 꽤 넓은데, 많은 사람들이 산타 크로체 성당의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머문다. 성당 왼편에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기념비가 서 있다. 1865년 단테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 기념비는 라벤나 출신의 조각가 엔리코 파치(Enrico Pazzi)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산타 크로체 광장의 가운데 있던 것을 훗날 교회 앞으로 옮겼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석상을 루이기 델 사르토(Luigi del Sarto)가 설계한 4각의 받침대 위에 세웠다. 받침대의 네 귀퉁이에 사자를 세우고, 단테 알리기에리의 왼발 뒤쪽으로 독수리를 앉혔다. 이 사자들을 메디치가문의 상징인 마조키(Marzocchi)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조키는 발로 구 혹은 공을 짚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피렌체의 상징인 마조코(Marzocco)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마조코는 백합(il giglio, 일 지오)이 들어있는 피렌체의 문장을 발로 세우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다. 1812년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 설치한 도나텔로의 마조코가 대표적이다. 마조코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Mārs)에 뿌리를 두었을 수도 있다. 또한 독수리가 합스부르크가문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가 아닌 것은 로마군단의 상징인 아굴라(Aquila)라는 점들을 고려하면 피렌체의 뿌리가 로마제국에 닿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산타 크로체 성당을 지나 일행이 간 곳은 페루치 매장이었다. 1948년에 피렌체에서 창립했다는 페루치(peruzzi)는 다양한 패션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특히 가죽제품이 유명하다. 두 아이들에게 줄 허리띠를 골랐다. 쇼핑을 마치고 일행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미켈란젤로가 살았다는 카사 부오나로티(Casa Buonarroti)를 지났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는 아레쪼(Arezzo)지방의 카프레세(Caprese)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후, 가족이 모두 피렌체로 이사했다. 이 집은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집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집은 몇 세기에 걸쳐 부오나로티 집안의 소유였고, 그 후손들은 위대한 예술가가 남긴 많은 작품들과 모델 그리고 스케치 등을 보관해왔다. 

1858년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후손인 코시모(Cosimo)가 사망한 지 1년 뒤에 이 건물과 소장품들은 피렌체 시에 양도됐고, 시에서는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소장된 미켈란젤로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계단의 마돈나(Madonna della Scala)’와 ‘켄타우로스 전투(Battaglia dei Centauri)’ 등이 있다. 

점심을 먹은 루바콘테식당(Ristorante Rubaconte)은 우리처럼 한국에서 온 단체 손님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닭찜 혹은 피자를 먹는 팀도 있었지만 우리는 피렌체 스테이크를 먹었다.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카(Bistecca alla Fiorentina), 간단하게 라 비스테카(La Bistecca)라고도 하는 피렌체 스테이크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피렌체의 시키아(Ciccia, 피렌체 속어로 고기를 의미한다)는 농담거리가 될 수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지배하던 16세기의 어느 8월 10일 밤, 그날은 로렌조 성인의 날이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이날 산 로렌조교회 주변에 대형 화로를 설치하고 쇠고기를 구워먹었다. 로렌조 성인이 순교한 뜨거운 석탄을 상징하는 유성이 흐르는 이날 밤, 축제에는 유럽 곳곳의 지배자와 부유한 상인들도 초대됐다. 엄청난 양의 쇠고기를 구워먹는 탐욕스러운 축제에 흥분한 영국 귀족들이 ‘비프스테잌!’을 외쳤다고 한다. 이후 토스카나의 대표적 요리인 비스테카(Bistecca)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피렌체 스테이크의 재료는 스코토나(Scottona, 15~16개월 된 임신한 적이 없는 어린 암소)의 엉덩이에 가까운 허리부위에서 얻는다. 특히 등심과 안심 사이의 포터하우스(Porterhouse) 부위가 포함돼야 한다. 만약 안심이 빠진 등심에 뼈가 붙어있으면 코스타타(Costata)라고 하는데, 어깨 쪽에 가까운 부위이다. 

어린 암소의 고기는 마블링이 풍부하면 부드럽고 맛있기 마련이다. 도축 후 15~21일 정도를 매달아두면 고기의 풍미와 부드러움을 더할 수 있다고 한다. 스테이크의 두께도 중요하다. 최소한 1.5인치는 돼야 하지만, 2~2.5인치가 넘어야 완벽하다. 무게는 1.5파운드에서 4파운드 사이가 좋은데, 3파운드 내외가 친구와 나누기에 가장 좋다.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면서 광우병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티본스테이크는 척수가 들어있는 등뼈가 포함된 음식이므로 광우병의 특정위험물질(specified risk material, SRM)에 해당된다. 

이탈리아 역시 광우병 발생 국가였으므로 특정위험물질이 음식재료로 사용돼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 스테이크를 팔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유럽연합의 광우병 종식선언이 있은 뒤에 관련 규제가 풀렸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에서는 1994년 2마리의 광우병소가 보고된 이래로 추가 보고가 없다가 2001년 48마리가 보고된 것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해 2009년 2마리가 보고된 것이 끝이었다. 기간 중에 총 144마리의 광우병소가 보고됐다. 2016년 프랑스에서 1마리의 광우병소가 보고된 이래로 세계적으로 광우병 발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목축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유럽까지도 풍전등화 상태로 몰고 갔던 광우병 파동은 30년 만에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봐야겠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