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신혼 6개월의 30대 초등학교 여교사가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치료를 받은 후 과민성 '아나필라시스' 쇼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약침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제기됐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 사건이 알려진지는 4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정부는 뚜렷한 대책이나 안전기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약침은 여전히 별다른 기준 없이 한의사들의 임의조제 하에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한방의료기관에서는 봉침치료에 사용하는 봉독의 품질이 국제봉독학회 기준 프리미엄 등급인 1등급(Grade1)이며 봉독임상연구회에서 인증을 받았다고 광고하거나 인증서를 내걸고 안전한 봉침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알리고 있지만, 불법 혹은 허위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20여명의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돼 창립한 바른의료연구소의 봉독약침의 안전성 판단기준과 인증기관의 적법성, 인증 받았다는 봉독약침의 불법 조제 및 판매 의혹, 허위·과장광고 여부 등에 대한 질의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취지의 회신을 보냈다.
답변서에서 복지부 한의약정책과는 “대한한의학회 문의결과 봉독임상연구회는 학회 산하 연구조직이 아니며 특정 의료기관에서의 불법제조가 의심되는 경우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바, 해당 의료기관 관할 보건소와 상의하기 바란다”고 답했다.
허위·과장광고 관련해서는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가 “봉독임상연구회가 발급한 봉독품질인증서의 경우 의료법에 따라 금지되는 광고의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세부 광고내용과 관련된 위·적법 여부에 관한 사항은 관할 보건소로 문의해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 봉독약침 관련 인증서를 걸고 안전성을 강조하는 안내글을 남긴 한의원 중 일부인 6곳에 대한 관할 보건소의 판단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서울 A보건소는 연구소의 문제제기에 “한의원 블로그 의료광고 내용 등이 의료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어 수정 등 행정지도 조치를 했다. 다만 봉독약액은 공동이용신고가 된 타 한의원의 탕전실에서 조제된 한약제제임을 확인했다”고 답신했다.
반면, 대구 B보건소는 유사한 내용의 블로그 글에 대해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도 아니지만, 해당의료기관과 봉침의 경우 타 의료기관 및 의료인을 비방하거나 절대적인 안정성을 나타내는 등 소비자를 현혹하는 허위내용으로 볼 수는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내용을 전했다.
충청북도 C보건소는 “프리미엄 1등급 봉독사용이라는 광고와 의료인 등의 기능 진료방법관련 심각한 부작용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의료광고, 의료광고심의규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봉침, 수술 없는 등의 문구를 블로그에 게시한 것은 의료법 위반으로 주의조치와 행정처분을 진행 중”이라며 위법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보건소마다 결론을 달리내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봉독약침의 안전성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B보건소는 “봉침을 조제하는 봉독임상연구회는 봉독을 포함한 약침을 조제할 수 있는 탕전실이 설치된 한방의료기관으로 확인됐고, 해당의료기관과 원외탕전 공동이용협약을 맺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신뢰성과 안전성은 전문 기관이나 단체에서 검증할 사안이라고 덧붙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C보건소도 “국제봉독학회, 봉독임상연구회, 봉독 품질인증 관련 답변은 지자체에서 답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봉독에 대한 인증 및 신뢰성, 봉독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보건소에서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는 보건소에, 보건소는 불특정 전문기관이나 단체에 떠넘기고 있는 꼴이다.
문제를 제기한 바른의료연구소는 “한방의료기관들이 발급받은 인증서의 그래프 모양과 수치가 모두 동일해 봉독연구회 회장이 운영하는 한의원 탕전실에서 제조한 봉독약침을 검사기관에 보내 검사하고, 봉독연구회의 약침을 구입한 모든 한방의료기관에 동일한 품질인증서를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어 “복지부는 민원회신을 2회에 걸쳐 연장하고도 최종처리기한을 지키지 않았고, 민원신청 4개월여만에 최종답변을 했지만 의료광고에 대해서만 불법으로 보인다고 할뿐 인증서나 봉독연구회의 위법행위여부에 대한 답변은 애써 회피했다. (민원을 제기한) 보건소 6곳 중 5곳은 불법 의료광고시 의료법상 내릴 수 없는 ‘행정지도’만을 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연구소는 또, 복지부에 봉독약침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2차례에 걸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1차가 “봉독약침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 2차가 “제안한 유효성, 안전성 등에 대해 관련 R&D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현재 봉독약침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의사들이 조제해 쓰는 약침을 어떻게 안전하게 조제할 수 있을지 큰 틀에서 논의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약제제발전협의체가 운영돼왔고, 여기서 약침의 안전성이 의제로 올라갔다. 현재 논의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려운 단계라고 답했다. 다만, “현재 약침에 대한 안전성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한의사 책임 하에 조제돼 사용된다. 안전성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기준이든 다른 방향으로든 협의체에서 논의해 안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봉독임상연구회는 2004년 민족의학신문사 부설 한의임상연구회 산하로 시작했다. 이후 윤경탁 안아픈세상네트워크 대표(당시 안아픈세상한의원장)이 연구회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공개된 자료나 정보가 많지 않다.
일부에서는 봉독임상연구회에 소속된 이들 중 일부가 면역통증의학회를 구성해 나왔고, 회장으로 있는 윤경탁 대표는 안아픈세상한의원을 폐업하고 네트워크 한의원 대표직만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다행이라면 어느 누구도 조사를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안전은 누가 어떻게 담보할지, 책임은 누가 질지 의문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