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홍역으로 비상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31일 현재 홍역확진환자는 총 42명으로 대구 15명, 경기도 안산 12명을 비롯해 서울, 인천, 전남 등에 분포해있다. 30일 제주에서 확인된 의심환자까지 포함하면 총 43명이 감염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천의 한 의료기관에서의 대응이 논란이 됐다. 한겨레는 30일 홍역을 의심한 환자 A씨가 인천시 재난안전상황실에 문의해 ‘홍역 선별진료소 지정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으로 내원했지만 정부의 지침은 지켜지지 않았고 감염확산에 무방비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가 찾은 B병원 접수창구 직원은 점심시간이라며 1시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는가 하면, 바로 진료를 보려면 응급실을 찾아가라고 전했을 뿐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인천시가 지정한 12곳의 선별진료소 중 한 곳이라는 병원에는 실제 선별진료소가 설치돼있는지 환자가 인지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홀로 응급실을 찾은 A씨는 응급실 문 앞에서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으며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홍역 1차 접종도 못한 9개월 아기의 아빠라 걱정돼 검사를 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체열과 혈압측정조차 받지 못했다”면서 “병원에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데 홍역 확진이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황당했다. 병원 직원이 전염성 질병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고 한겨레를 통해 밝혔다.
현행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배포한 홍역대비 매뉴얼에 따르면 병원은 내원한 의심환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의 인도에 따라 다른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별도로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외래 또는 응급실로 의심환자가 바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리해야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와 관련 병원은 A씨의 경우 병원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막내가 착각한 것이며 응급실 앞에 있는 선별진료소에서 의사가 홍역이 의심되는지 아닌지, 발진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등 증상에 대해 상세히 물어봤다고 해명했지만, 지침에 따라 환자관리가 이뤄졌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이 어디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후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마저 달라진 점이라고는 일정규모 이상의 병원에 음압시설을 설치하고, 지침이나 감염관리를 위한 별도 인력을 배치하는 정도가 전부라고 토로한다.
더구나 이와 같은 조치마저도 수익이 남는 대형병원에서나 도입할 수 있는 방식이고, 지방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감염병 관리를 위한 별도 인원배치나 시설을 갖추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말한다. B병원처럼 감염관리지침을 일선 간호사나 병원 근무자들에게 숙지시키고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조차 힘겹다는 것이다.
한 지방중소병원 원장은 “감염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환자뿐 아니라 병원 직원들을 위해서도 감염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환자치료를 위한 적정인력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감염병이 유행할 조짐을 보일 때마다 내부적으로 지침을 공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지만 부족한 인력과 지원 속에서 병원 홀로 맞서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답답함을 보였다.
이어 “충분한 지원 속에 감염성 질환에 대응할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하고, 지속적으로 질을 관리하는 한편, 환자들이 관련 정보를 쉽게 찾고 받아들여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자체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다 세밀한 대응체계를 갖춰야한다”며 “적어도 환자가 어딜 가면 어떻게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알려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와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등 유럽국가에서 2017년 이후 홍역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 홍역환자 증가 또한 해외유입에 의한 확산으로 보고 예방접종과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강조해왔다.
아울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에 분포한 선별진료소 지정의료기관을 공개하고, 질환이 의심될 경우 지체 없이 해당 의료기관을 방문해 적절한 치료나 조치를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현재 지정의료기관은 서울 26개소, 부산 19개소, 대구 15개소, 광주 5개소, 대전 7개소 등이 운영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