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의사의 과로사 사망 소식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16년 전국 의사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전국 의사 8500여명 대상으로 한 해당조사에서 진료의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50시간, 의사 10명 중 7명(68.5%)은 주 6일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취업자의 2017년 기준 주당 평균 근로시간인 42.8시간과 비교하면 7시간가량 차이가 나는 수치다.
전공의의 경우 2017년부터 법적으로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할 만큼 통상 근무시간이 길다. 그러나 전공의특별법에 명시된 법정 근무시간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8년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자체 조사에서 전공의들이 경험한 주당 최대 근무 시간은 평균 85.63시간으로 주 80시간을 초과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최근 보건복지부는 전체 수련병원 244곳 중 94곳(38.5%)을 법정 근무시간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내렸다.
수련병원 내 흉부외과 등 비인기과목 교수들도 덩달아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흉부외과의 경우 지난해 전공의 충원율 57.4%로 낮은 수준에 그쳤다. 또 대한흉부외과학회가 시행한 조사에서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주당 근무시간이 평균 76.1시간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심지어 주당 최대 13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의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사’는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직업이다. 취업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625명을 대상으로 ‘미래 자녀 희망직업 선호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인’은 1위인 ‘공무원’(31.4%, 복수응답)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의사들의 직무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2016년 전국 의사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1.2%가 ‘다시 태어나도 의사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으며, 다른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답은 38.8%였다. 직업 만족도의 경우 45.7%가 전문가로서의 의사 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19.4%에 그쳤다.
의대 입시 또한 부동의 최상위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분위기가 안정되지 않는 한 의대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성룡 진학연구소장(커넥츠스카이에듀)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의사’를 볼 때 헌신하고 고생하는 이미지보다는 돈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물론 의대 공부가 어렵다는 점은 다들 알지만 고생한 이후에 오는 장점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라며 “또 우수한 학생들이면 적성과 상관없이 일단 의대를 목표로 삼고, 어른들이 이를 적극 권하는 분위기도 한 몫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 소장은 “실제로 컴퓨터 전공을 희망했던 고3 수험생이 수능 점수가 잘 나오자 의대로 진로를 선회한 사례도 있다”며 “여전히 이과 수험생들 사이에는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의대가 낫다는 인식이 많다. 그만큼 취업이 어렵고, 정년이 불안한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