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가명)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아이의 몸은 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피부를 비롯해 온 몸 각 기관과 조직에 염증과 손상이 발생했다는 증거였다. 병마는 채 피우지도 못한 아이의 꿈을 앗아갔다. 한 미취학 아동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국내 희귀질환인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us, 이하 루푸스)로 인한 사망자 숫자에 1이 더해졌을 뿐이다.
희귀 난치성 전신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로 인해 몸과 마음의 고통은 물론, 경제적 곤경에 처해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루푸스는 피부, 신장, 중추신경계, 심장, 폐, 혈액, 눈, 점막과 위장, 세망내피 및 근골격계를 포함한 여러 장기와 시스템에 염증 등이 발생하는 전신성 질환이다. 면역계는 우리 몸에 침입한 이물질을 공격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루푸스에 걸리면 면역계에 이상이 생겨 건강한 세포와 조직을 공격하게 된다. 신체의 일부 장기에만 증상이 나타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 루푸스 환자는 2만4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난치성 희귀질환인 탓에 환자들은 증상 완화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현재 의료보험급여로 지원되는 약들이 있지만, 기존 약으로 해결이 안 되는 5% 가량의 중증 루푸스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비록 주사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비급여인 탓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한 달에 네 번 주사를 맞는데 드는 비용은 160만 원가량. 일 년이면 2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진혜 ‘사단법인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 회장은 하늘이(가명)를 가슴에 묻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3년 전 지방의 한 보육원으로부터 “심각한 루푸스 환자가 있다”는 다급한 전화가 하늘이와의 인연의 시작이다.
중증 루푸스 환자였던 하늘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백방으로 후원을 요청해 신약 처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약값을 충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신약 투약은 중도에 멈췄고, 얼마 뒤 하늘이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협회장은 말한다. “하는데 까지 더 해보고 싶었어요. 지원을 받으려고 뛰어다녔고, 서울 제 집에서 치료를 받게 하려고 했지만 결국….”
루푸스 질환 특성상 지속적으로 약을 사용해야 하지만, 급여화가 되지 않은 신약에 드는 비용은 환자로 하여금 치료를 포기하게끔 만든다. 김 협회장은 “증상이 개선된다면 환자 심정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약값 때문에 시도를 해도 얼마 못가 포기하고 마는 상황이 안타깝다. 환자들은 가족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여력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루푸스는 대부분 여성에게 발병한다. 때문에 김 협회장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고민 상담을 많이 받는다. 시댁에 병을 어떻게 알려야할지, 원만한 결혼생활은 가능할지, 임신과 출산에 지장은 없는지 가임기 여성 환자들의 시름은 깊다. 임신 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있어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김 협회장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 병이 어떤 기관에 어떻게 퍼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걱정을 안고 삽니다. 병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요.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환자들은 심리적인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발병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김 협회장은 이번 달에만 청소년 4명과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특히 새로 학기가 시작할 때 루푸스 발병이 잦다고 설명했다. 부모조차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녀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은 또 다른 복병이다. 우선 아이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지 못해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병을 숨겼다가 문제도 생긴다. 교사도 학생들의 입시와 성적에 바빠 환아의 병 관리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 보살핌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김 협회장은 “정부는 신약의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인구대비 유병률과 기대효과 등을 고려할 것”이라며 “루푸스 등 희귀질환자들은 통계상 ‘미미해’ 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루푸스 환자의 사례가 확 눈에 띄는 수치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어요. 사례도 많지 않다보니 급여화 등에 대한 논의가 더딘 것 같아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선진국처럼 환자의 이야기를 더 듣고 정책 토론을 더 많이 했으면 합니다.”
그는 루푸스 환자의 중증도와 이 병이 야기하는 삶의 질 저하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푸스 치료제의 급여화나 위험분담제 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기대수명’이 고려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병의 중증도와 이 병이 얼마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증 질환일수록 신약 사용 등을 통한 치료가 이뤄지도록 보건당국은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야 합니다.”
하늘이의 피지 못하고 스러진 꿈. 지금도 어디에선가 또 다른 하늘이가 루푸스의 고통 속에 신음한다. ‘죽을 병은 아니’고 ‘환자 수도 적다’는 정부 통계 속에 환자의 한숨과 고통은 기록되지 않는다. 숫자는 있지만 사람은 없는 보건당국의 정책에 희귀질환자들의 ‘소수의견’은 외면 받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