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난무해도 처벌은 솜방망이…‘지라시 공화국’ 대한민국

'2차 가해' 난무해도 처벌은 솜방망이…‘지라시 공화국’ 대한민국

기사승인 2019-03-19 06:15:00

최근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불법 촬영·유포’ 사건과 관련된 지라시(사설 정보지)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대중은 문제의식 없이 지라시를 공유하며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 여러 여성 연예인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정준영 리스트’는 세간의 관심사다. 지라시에는 피해자 명단 외에 성적인 상황 묘사까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해당 연예인들의 이름은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정준영의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정준영 걸그룹’ ‘정준영 피해자 명단’ 등이 뜨기도 한다. 거론된 여성 연예인 중 몇몇은 ‘사실무근’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연예 기획사 JYP는 지라시로 인해 소속 연예인이 피해를 입자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를 고소했다.

대중은 지라시를 단순 가십으로 소비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정신적·물질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만일 정준영 사태에서 파생된 지라시 중 일부가 사실이라 해도, 성범죄 피해자에게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피해 내용을 공공연히 폭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김지은씨는 미투 폭로 이후 무수한 지라시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의 인성에 대한 일방적 주장과 인적사항, 성폭력 피해 정황 등이 가공되어 퍼졌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은 지라시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14일 "(정준영 사건과 관련해)허위사실 유포 및 불법 촬영물 유포·제공 행위가 확인되면 적극적이고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며 "최초 유포자가 아닌 단순 유포자라도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위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 또 규정 형량도 일반적인 명예훼손죄(징역 5년)보다 무겁다. 전파 속도와 범위 제약이 없는 까닭에 피해 규모가 더욱 클 수 있어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방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거짓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설령 유포한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엄연히 현행 법률에 규정된 기준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라시 작성·유포자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유재원 '메이데이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라시로 인한 명예훼손은 친고죄(고소권자가 고소해야만 공소제기 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서 수사할 수는 있으나, 가해자를 엄벌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벌금형이 나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라시가 초래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관련 범죄를 솜방망이 처벌한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배경이다.

전문가는 무분별한 지라시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릇된 집단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문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문화가 심해 늘 타인의 이야기에 과도하게 관심이 많고, 개입하고 싶어 한다”며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심리가 지라시 작성과 유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호기심을 위해 집단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대중이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서는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고 봤다. 그는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관심이 호기심을 부추기지만, 피해자를 가족이나 친구 같은 ‘내 집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연대의식을 갖지 않는다. 상대가 입을 상처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갖지 않으며, 신경도 안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지영의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