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검진'하면 뭐하나...치료 안 되는데

우울증 '검진'하면 뭐하나...치료 안 되는데

우울증 국가건강검진 실효성 논란...진단-치료 연계 미비·SSRI항우울제 처방 규제 지적

기사승인 2019-03-29 04:00:00

“우울증 검진하면 뭐합니까. 치료가 안 되는데요.”

28일 의료계에서는 우울증 국가건강검진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앞서 정부는 올해부터 국가건강검진의 우울증 검진 대상을 기존 40세 이상에서 20~30대까지 확대한 바 있다. 검진에서는 간이설문조사를 통해 우울증 여부를 스크리닝 한다. 우울증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이 같은 검진 확대가 ‘우울증’ 낙인찍기에만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울증이 진단된 환자를 치료로 연계하는 시스템이 미비하고, 치료 환경이나 인식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영식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건강검진 관련 포럼에서 “우울증은 검진보다 관리가 중요한데 우리는 검진만 하고 관리는 하지 않는다”며 “치료없는 우울증 진단은 환자들에게 정신질환이라는 낙인만 찍을 뿐 아무 실효성이 없다”고 우려했다. 검진 후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니 예방과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의료현장의 과도한 규제가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우울증 치료에 쓰이는 SSRI 항우울제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만 쓸 수 있도록 한 규제가 문제”라고 지목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급여기준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4대 신경계 질환에 동반된 우울증에 한정) 의사 외에는 SSRI 항우울제를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해당 약제를 보통 6개월에서 1년가량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60일 후 항우울제 복용을 중단할 경우 우울증 악화, 자살사고 증가 등 부작용 위험이 크다.

홍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은 SSRI 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자살률이 확연히 줄었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SSRI 처방률이 낮고, 수년째 자살률 1위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 때문에 나타난 증상을 경증질환으로 착각해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찾고, 또 질병의 동반질환으로 우울증을 함께 앓는다. 그러나 규제가 시작된 이후 정신과가 아닌 진료과에서는 우울증 진단과 치료가 멈췄고,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의료계도 우울증 국가건강검진에 일부 한계가 있다고 봤다. 검진에 의미가 있으려면 치료연계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동반돼야 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가건강검진 내 우울증 검진은 대면 문진 없이 설문조사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조기발견과 치료에 대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생각된다. 참고이상의 의미는 없다”며 “다만 불면과 함께 일과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의욕이 없고 우울하다면 도움을 청하고 전문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인의 자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심각하다. 2017년 기준 국내 자살률은 24.3명(인구 10만명당)으로 OECD국가 평균 11.9명을 웃돌았다. 의료계는 우울증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은 서둘러 치료하면 쉽게 회복되지만, 심한 경우 방치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기도 하다.  2주 이상 심한 우울감으로 불편이 지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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